세상 가장 아름다운 길 밀포드 트랙. 2

밀포드 트랙이 뻗어있는 뉴질랜드 남섬의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입니다. 빙하가 깍아내린 U자형 날카로운 계곡과 깎아지른 절벽이 곳곳에 위치하며 연간 강수량이 풍부하여 물빛 고운 강과 호수와 피요르를 만들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트레일 갓길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만큼 쥐덫을 설치해두고 있습니다. 과연 저것이 의도하는 만큼 효과를 보는 것인지 우라지게 받아먹는 각종 부과금의 사용 용도의 과시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오늘은 밀포드 트랙의 하이라이트인 매캐넌 패스(1,154m)를 넘는 날입니다. 저녁 식사후 소일거리로 미니 윷놀이를 하기도 합니다만 밤 10시면 소등해버리니 일찍 잠 잘일 밖에 없고 이른 아침이면 다 준비하고 어서 가자고 합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산장을 떠나 우리는 이미 길 위에 있습니다. 길은 곧바로 치고 올라가는데 워낙 가파라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었습니다. 한 2시간 동안을 그저 나뭇가지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는 산세만 확인하며 숲길을 걷고 산 중턱을 오를 때에야 비로소 시야가 확 트입니다. 점점 얕아지는 관목들 사이로 거센 바람에 힘들게 꽃을 피운 야생화가 납작 엎드려 있고 꽃보다 더 화려한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계곡에 빛이 드니 이틀 동안 걸어온 우리의 발자취가 클린턴 계곡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푸른 잎새들과 황금 빛 메마른 가을 풀들. 묘한 조화가 밀포드 트랙 산하에 가득하니 길이 아름답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언제 내렸는지 모를 눈이 고개 넘는 주변의 산마다를 덮고 있으니 미려한 풍경을 극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잡힐듯 다가온 작은 십자가가 세워진 돌탑. 정상이 멀지 않습니다. 아직 가을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바람은 거세게 겨울 날씨처럼 매섭게 불어닥치고 건너편 산에는 만년설인양 하얀 눈을 이고 있습니다. 매키넌 패스 곳곳에는 천연 습지가 형성돼 있는데 천미터가 넘는 고지에 맑은 물을 담고 있는 습지가 있다는게 신기하기만 한데 이 물에 비치는 설산들의 자태가 수려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특히 연못에 반영된 설봉 마운트 하트(1,769m)의 모습은 그중의 압권입니다.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푸르른 계곡과 웅장한 산봉우리로 가득한 장엄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빙하에 깎여 만들어진 거대한 계곡의 전망은 경이로 다가옵니다. 전망대 발 아래는 수천길 낭떠러지. 그 앞에서 용기내어 열심히 부산을 떨며 사진들을 찍는데 갑자기 차오른 자욱한 안개와 함께 바람이 몰아쳐 쫓기듯 매키넌 패스를 넘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대피소로 몸들을 피합니다. 가이드와 셀프 가이드 트레킹 참가자들과 건물을 반으로 나눠 공동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매키넌 패스 대피소인데 이곳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하염없는 내리막길에 몸을 던집니다.

길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따라 아서계곡(Arther Valley)으로 이어지는데 거침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폭포가 맑은 계곡의 정취를 더욱 고조시킵니다. 오른쪽에는 저보이스 빙하를 끼고 있는 엘리어트산과 윌머산이 날카롭게 솟아 있고 왼쪽 저 멀리로는 맥켄지산과 하트산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맥켄지산과 하트산 사이에는 1890년 퀼에 의해 발견된 지름 호수가 형성돼 고운 물빛을 한껏 자랑합니다. 한곳에 머무르며 프로펠라 소음을 잔뜩 일으키고 있는 구조용 헬기가 자못 성가시는데 우리는 그냥 지나쳐온 응급 도로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무슨 큰 사고나 없기를 바라며 무릎이 시큰할 정도의 오랜 내리막 길을 경험합니다. 가파르게 이어진 하산길 곳곳에는 나무계단을 설치해놓았는데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 뒤에는 너무 인위적인 시설물이 오히려 짜증나게 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 물을 한웅큼 잡아 이마도 적시면 좋으련만 아예 접근을 못하게 하고 그저 멀리서 보기만 하라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자연과의 만남이 되랴? 삐친 마음에 아더 강 상류의 으르렁 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곳곳에 내리쏟는 폭포를 지나 완만한 길로 들어 걷다 보니 서드랜드 폭포로 진입하는 퀸틴 로지가 나타납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580m의 서덜랜드폭포는 3단 폭포로 그 위용은 멀리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합니다. 왕복 1시간 반 걸리는 서덜랜드 폭포를 보기 위해 잰걸음으로 달려가는데 한 삽십분을 오르락 내리락 거렸나 할 때 현수교 다리를 건널 즈음에 폭포의 완전한 자태가 시야에 꽉찹니다. 멀리서 거대한 짐승이 울부짓는 듯한 폭포 소리. 사실 폭포는 멀리서 봐야 전부를 볼수 있는데 그 욕심이 뭔지 낙하지점까지 다가갑니다. 폭포는 장대했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흩어지는 물방울에 흠뻑젖는데 고막을 때리는 굉음과 엄청난 유량이 만들어내는 바람의 생성 등 경이로운 광경에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젖은 몸 말리며 돌아온 퀸틴 로지에서 제공하는 각종 냉온 음료 한잔 나누며 서들랜드 폭포의 감상평을 무용담 삼아 서로 목청높입니다. 지친 몸으로 들어선 덤플링 산장에서는 우리 12명을 위해 한 방을 사용하게 하며 문패처럼 Korean 이라고 써둔 배려가 무척 대견스럽고 가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밀포드 트랙의 마지막 날. 산장을 나선 후 티없이 맑아 팔뚝 크기의 송어가 유영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아서강과 고요히 누워 밀포드의 산하를 품고 있는 아다호수를 따라 길은 이어집니다. 아서강을 건너 다시 숲 속으로 이어지는 길은 잠시 쉬어가라 이르며 사이드 트레일이 나있는데 시원하게 물바람을 날려주는 맥케이폭포(Mackay Falls)와 그아래 바위 밑으로 들어가 괴이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종바위(Bell Rock)가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더 강 위에 걸쳐 있는 현수교가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그 고운 물빛에 젖고 싶은지 젊은 트레커들이 옷을 벗고 다리 위에서 강물로 풍덩 뛰어듭니다. 우리도 마음 같아서는 함께 창공을 나르고 싶었습니다만 나이도 나이이기도 하지만 종주 시작 후 삼일 째인 어제 추위를 무릅쓰고 로지 앞을 흐르는 평사낙안에서 멱을 감았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죠. 그 다리 밑에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전투식량 비빔밥에 라면 끓여 열두명이 풍겨대는 음식 내음에 지나는 이들이 모두 시샘 반 부러움 반의 시선으로 쳐다보며 지나갑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밀포드 트랙은 샌드플라이에서 끝이 나고 보트를 타고 밀포드 사운드 후미진 곳을 떠나 큰 부두에 다달음으로써 끝이 납니다.

나는 솔직히 이길을 걸으며 과연 밀포드 트랙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이며 세계 10대 15대 트레킹에 속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늘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대부분인데 어쩌다 화창하고 푸르른 날에도 매키넌 패스를 넘을 때나 겨우 제대로 된 풍경 하나 펼쳐놓을 뿐 죄다 걷는 길이 이끼로 채워진 숲과 크리스탈 처럼 투명한 물의 향연 그리고 헤아릴수 없이 많은 폭포 뿐. 저마다 트레킹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목적은 모두 다르고 다양하겠지만 나처럼 세상 보기드문 풍경을 보기 위해 오지로 미답의 길을 떠나는데 이거야 안데스의 한 모퉁이 보다도 히말라야의 어느 한 후미진 산자락보다도 못한 풍경으로 150년 가까이 우려먹는 것은 아닌지 올 때 마다 영 사기당한 느낌입니다. 하룻밤 고작 눈비 피하며 자는데 일인당 $100 가까이 받는데도 집단 수용소 같은 곳에 벙크배드 지어놓고 메트리스 하나 깔아 주고 히터도 들어오지 않는 Hut에서 내가 짊어지고 간 침낭을 덮고 추위에 떨어야 하는 이 모순 덩어리의 트레킹. 이 트레킹을 위해 버스타고 배타는데도 입이 벌어질 가격으로 뉴질랜드 국가가 나서서 바가지 씌우는 희한한 구조의 트레킹. 과연 이 속임수의 놀음에 계속 장단을 맞춰줘야 하나 하고 많은 고민이 생깁니다. 물론 영국 잡지사에 기고한 블랜치 보한(Blanche Baoughan)이라는 시인은 문명의 틈새에서만 살아온 그의 일생동안 뉴질랜드에서 조우한 이 밀포드(Milford) 트랙은 분명 매우 특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산길(A Notable Walk)로 소개했는데 편집장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뉴질랜드 정부의 공작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산길(A Finest Walk in the World)로 바뀌어 실렸고 세인들은 한술 더 떠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길로 떠벌리게 되어 백년이 넘도록 우려먹고 있는 작금의 현실. 그래서 나는 지인들에게 이곳은 가슴의 떨림이 멈추고 두 다리가 떨릴 때 그리고 세상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을 모두 다니다가 더 이상 갈 만한 곳이 없을 때 가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빠져 트랙의 말미를 걷는 나에게 얄미운 샌드플라이(Sandfly)가 모질게도 달려들어 피를 빨아 먹습니다. 뉴질랜드 정부처럼.....

세상 가장 아름다운 길 밀포드 트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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