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3

하얀 암산들에 비치는 황홀한 일출. Lagazuoi 산장 베란다에서 향기 짙은 아침 커피를 한잔 음미하며 일출을 즐기고 시작되는 하루. 수세기 동안 격리되어 살아온 이 계곡의 사람들은 독일어와 라틴어가 결합된 Ladin(라딘)이라는 언어를 쓰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로미테의 등반사는 전쟁과 함께 이어져왔듯이 봉우리 곳곳에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군 진지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동굴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산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휴식처가 되기도하며 흥미로운 등산로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계 1차 대전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간 전투의 선봉이 되었던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지금도 돌로미테를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은 색다른 문화와 이색적인 사람들과 삶이 있습니다. 서알프스 처럼 만년설과 침봉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암봉과 구릉 같은 산으로 형성된 이지역 산세이지만 돌로미테가 주는 의미는 큽니다. 과거 로마를 넘본 모든 민족들은 돌로미테를 넘어야 했습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롬바르디평원을 내려다보며 일갈했고 켈트족 고트족 등 로마로 향한 모든 이민족들도 한니발처럼 이 동 알프스를 넘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넘은 알프스가 돌로미테 자락입니다. 로마가 세상으로 나갔던 길이기도 하고 로마를 품으려는 민족이 넘어온 산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돌로미테는 역사와 자연을 품고 있는 길입니다.

오늘은 라가주오이 산장 바로 아래에서 그 치열했던 세계 1차 대전의 격전지인 오스트리아의 제 4 요새를 볼 수 있습니다. 요새에 아직 남아있는 대포가 향하고 있는 저 아래 친퀘토리의 이탈리아군의 진지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긴박함이 자연 느껴집니다. '비아 페레타'라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산악부대의 이동 경로를 볼 수 있는 구간으로 사령부와 대포 진지나 참호 등의 전쟁 시 모습들과 파괴된 흔적들이 남아있는 암반 슬로프를 지나는데 역사의 처참함이 아름다운 자연미 속에 스며있으니 묘한 감정이 입니다. 특히 자연 갤러리가 되어버린 길을 걷다가 돌연 길이 없어져 버리면서 여기가 트레일의 끝이구나 생각하고 되돌아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길은 이어지고 이곳에는 쪽문 같은 출입구가 하나 있어 터널로 들어가 지겹도록 내려가는 하산길의 굴로 된 통로임을 알게 됩니다. 거의 5백 미터나 되는 굴로 암반을 뚫어서 낸 군사용 땅굴입니다. 기묘하기도 하고 그 엄청난 대역사가 가히 놀랠만 합니다. 곳곳에 감시용 망루가 설치되고 대포 거치대. 지휘부 동 등 군사활동을 위한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더욱 춥고 을씨년스럽게 만듭니다. 기나긴 땅굴을 무릎이 시큰하도록 내려와 바깥 세상으로 나오니 인간들의 살아 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을 배워 야생화들도 벼랑 끝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이제 길은 부드럽고 평탄해지며 향기 내뿜는 솔밭길을 통과하는데 운좋으면 영양 샤모아의 환영도 받게 됩니다. 다시 높은 돌로미테 산군으로 향하여 Falzarego pass를 지나서 Nuvolau 정상을 오르고 넓고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는 산장에서 한잔의 시원한 생맥으로 목을 축이고 휴식을 갖습니다. 까마득한 절벽에 세워진 돌로미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장 Nuvolau(2575m)을 오르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참입니다. 이 벼랑 끝 명물 산장 전망대에 서서 산하를 굽어보면 협곡에 펼쳐놓은 물길과 폭포 그리고 간헐적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알프스의 설봉들 그리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들. 천상 극치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황제가 부럽지 않은 이 순간. 푸른 초원 뒤로 솟아난 돌로미테의 바위산군은 너무 거대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데 그 바위봉우리들 사이로 길은 이어져 끝없는 띠를 두르고 차마 갈수 있을까 하는 곳까지 개척해낸 인간의 발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경외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거친 자연과 투쟁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투박하고 억세어 정이 없을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이 내놓은 전통음식과 친절함은 그런 인식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공통으로 사용하는 화폐는 유로. 유럽연합을 일구어낸 것은 유럽은 하나고 조상도 하나라는 동류의식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쓰는 언어도 한 국경을 넘으면 한자씩 변형된 형태. 그래서 지금은 복잡하게 조각난 국경선을 잠시 지우고 나면 사실 가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을 가장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은 없어야하며 항구한 평화와 그리하여 무궁한 행복이 인간세상에 뿌리내리기를 간구해봅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장이었고 이 트레킹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바위산 Chinque Torri를 지나며 지금은 수려한 들꽃들로 가득 수놓은 초록 들판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친퀘 토리 산장을 지나면서 길은 더욱 순해져 숲과 테라스를 지나는 거의 평지의 코스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Alta Via 1 의 다양한 풍광을 즐길수 있는데 각종 야생화가 화원처럼 펼쳐진 목초지를 지나고 소나무 들이 줄지어 가득한 길도 걷게 됩니다. 간단없이 왔다갔다 하는 길이 어느 정도 갈무리되면 코르티나 계곡의 풍성한 대자연의 풍광을 풀어내 놓습니다. 또한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즐거운 하향길 끝에는 호수를 끼고 있는 곱게 단장한 Croda da Lago G Palmieri (2066m)산장이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놓쳐버렸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대화에 신경을 쓰다보니 빠져나가야 하는 길을 확인하지 못하고 아스팔트 길로 한참이나 내려가버렸습니다. 다시 올라오기도 아득하고 오기도 생겨 휘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가장 저점을 찍고 다시 치고 올라오는데 무려 두시간 반을 소진해버렸지만 꽤나 근력운동하며 신선한 땀도 많이 배출하여 우린 서로 만족해 합니다. 인생 돌이킬 수 없다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즐겨야하듯이 말입니다.

비탈길 하나 더 만나 굵은 땀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열심히 오르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라고 산장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겨우 점심먹을 시간인데 말입니다. 경로를 벗어난 길을 과외로 걸었다는 허탈감 때문일까 피로의 누적 때문일까. 슬며시 허물어지는 우리의 오기. 산장 주인장에게 방 있어요 하고 넌지시 물어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방이 있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운명의 굴레라며 방을 배정받고 다시 배낭메고 나와 호숫가에 자리잡고서는 점심 식사를 끓여 먹습니다. 주변엔 방목된 노새와 망아지들이 가득한데 구수하고 찰진 냄새를 따라 모여드는 노새떼들. 황망하기 까지 한데 물을 뿌리다가 돌을 집어 던지다가 급기야는 라이터 불로 벌름거리며 다가오는 놈들의 코에 갖다 대니 그제사야 뒷걸음으로 물러섭니다. 시간마저도 정지한듯한 한적한 심산의 풍경들. 호수는 티없이 맑고 용감한 처녀 둘이 수영복 입고 저 찬물에 멱을 감습니다. 옆의 어린아기가 빵조각을 물에 던지는데 수십마리 고기떼가 새카맣게 몰려듭니다. 뜰채만 있다면 저 청정 빙어를 건져서 배도 안따고 무채에 식초 고추장 넣고 버무려 쇠주 한잔.. 즐거운 상상이 꼬리를 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내년에는 꼭 뜰채를 그리고 무우와 초고추장 챙겨오겠노라고...

호수와 호수를 에워싼 숲과 그 숲 위로 돌출된 위엄서린 바위산들. 돌로미테는 하늘 아래 자리 잡은 대지의 산물 중 은은한 매력을 발산하는 신의 피조물 중 최고 결정체입니다. 서알프스를 상징하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암봉들은 날카롭고 사납습니다. 반면 줄리앙 알프스의 슬로베니아나 동알프스의 돌로미테 암봉들은 포근하고 애틋합니다. 눈요깃거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소통하고 느끼는 대지의 기운이 가득한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산세로 인해 누구나 돌로미테를 걷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 왠만한 봉우리 사이로 난 고개는 모두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여 넘게 해줍니다. 그런 돌로미테가 아직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탓에 여행객들로 몸살을 치르는 서알프스의 길들과는 달리 차분한 길을 걷고 싶어하는 우리네 산객들에겐 정이 가는 곳입니다. 사람의 손길을 덜 타서 아직 순수함과 청순함을 지니고 있는 소녀 같은 산이랄까! 돌로미테는 그래서 걷는 사람의 천국이라 불린답니다. 높은 봉우리나 고갯마루에 올라서 장쾌하게 여울져 흐르는 산마루 물결들을 보면서 돌로미테 산군은 서 알프스의 산정을 덮고 있는 빙하들을 모두 벗겨낸 산세라면 너무 상상력이 동원된 지나친 표현일까! 산과 골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장대해지고 수려한 그러나 거친 산. 돌로미테. 동행은 돌로미테 찬가를 부르며 그 매력에 푸욱 빠져듭니다. 식곤증에 다사로운 하오의 햇살에 강행군하는 노독의 나른함에 하루를 마감했다는 완료감에.. 한없이 마음이 부유하고 평화로운 산장의 시간입니다.



www.mijutrekking.com
미주 트래킹 여행사: 540-847-5353

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3

거칠고도 수려한 풍경. 돌로미테 Alta Via 1 종주 트레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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