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3

매캐한 장작 태우는 내음에 잠을 깨는 새벽을 맞이하고 봇짐을 챙기는 나그네의 유랑은 다시 이어집니다.지금까지는 앵커리지 북부인 디날리와 글랜 하이웨이 지역을 돌았으니 다시 앵커리지로 돌아와 재정비를 해서 남부 쪽인 Whittier와 Seward 그리고 fjord 국립공원을 돌아 행할 8자형의 여정이 이어집니다. 먼저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고 피시 마켙에도 들러 와일드 레드 살몬도 작은 놈으로 한마리 챙깁니다. 싱싱한 횟감으로 골라 오늘 저녁은 위티어라는 어촌 마을에서 피요르드 같은 해협을 바라보며 달과 함께 겸작을 하려 합니다. 날이 궂어 달도 별도 함께 하지 못한다면 푸른 달 만큼이나 환하게 밝은 빙하를 벗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려합니다. 앵커리지에서 이곳 까지는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만 달리는 해안 길 Seward highway는 자꾸만 수려한 풍경을 내어 놓기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버립니다. 해협에 가득찬 안개 너머로 설산 빙산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계곡에는 가을색이 깊게 드리워져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거벽 사이마다 폭포들이 쏟아지고 구름인지 빙하인지 분간키 힘든 햐얀 천들이 산허리를 휘감으며 다가왔다 뒤로 빠지는 풍경들. 나는 승용차가 아닌 구름을 타고 날으는 신선입니다. 100년의 알래스카 철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대한 Portage 터널을 지나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재삼 인식하게 됩니다. 차와 기차가 번갈아 왕래하는 이 굴길은 무려 수 킬로나 이어지는데 제법 비싸다 여겨지는 통행료를 내어야 할 만큼 단단한 암석을 쪼개면서 개통한 하나의 대단한 걸작품입니다.

땅끝 마을 Whittier, Portage Pass Trail
터널을 빠져나오자 말자 오른쪽 자갈길로 들어서면 이내 트레일 헤드가 나오는데 그저 등산로임을 알리는 입간판과 곰을 주의하라는 그림 하나 세워뒀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차 하나 세워두지 않은 주차장에서 비옷과 장비들을 챙겨입고 후드를 쓰고 배낭을 단단히 졸라매고 초반 숲길을 걷는데 행여 누구라도 마주친다는 희망이 있다면 덜 위축이 될텐데 지형이나 주변 환경이 꼭 곰이 출현할 같은 곳입니다. 누구를 기다려보나 하고 망설이다가 이 비에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하고 체념을 하고 홀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왕복 7km. 폴티지 고개에 올라 전후로 펼쳐지는 빙하들과 그 빙하가 녹아 이룬 옥색 호수를 감상하고 내리막 길의 그 호수까지 이르는 길을 걷는 그리 길지는 않은 그러나 풍치가 너무도 미려한 트레일 입니다. 2,3십분 줄행랑 치듯 달려 올라가면 저 숲길을 통과하고 목초지를 걷게 되어 시야가 확보되니 곰의 출현도 미리 알 수 있으리라 혼자 별 통밥을 재봅니다. 아무튼 열심히 자갈길을 치고 올라갑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전면에 산마루 뒤에 숨어 있던 Portage 빙하가 솟아오르고 뒤를 돌아보면 위티어 마을이 점점 작아지면서 건너편 산봉들 너머로 또 다른 빙하군들이 숨바꼭질 놀이하다가 들켜버린 것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은 어느새 수로가 되어 시내가 되어 흐릅니다. 한참을 오르니 오른쪽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모여들어 길을 물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혹 희망서린 기대지만 누가 뒤 따라 올라 올수도 있고 또 내가 되돌아 내려 올 길이기에 잠시 수고를 해 물길을 길옆 도랑으로 돌려놓습니다 이중으로 미니 보를 만들어 주니 어느 정도 물길이 잡히고 도랑으로 콸콸콸 빗물이 흘러들어가니 뿌듯한 마음으로 가볍게 고갯마루를 넘습니다. 마루에 올라서니 앞에는 폴테지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져 있고 좌로는 만년설산이 우로는 장대한 폭포가 오늘따라 유달리 길게 낙하하고 뒤를 돌아보면 소담스런 해안 마을 위티어를 감싼 빙하들과 해협이 풍경화가 되어 보입니다. 한컷 한장면을 찍다가 이제는 숫제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있는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서 한폭에 담아봅니다. 또한 내 기억과 내 가슴에도 가득 채우면서 말입니다. 비는 여전히 소리 없이 뿌리지만 나만의 정상 등정 후 치루는 의식같은 세레모니를 오늘도 변함없이 거행합니다. 정상주 한잔 쭈욱 들이키고 한없이 넓어진 폐부로 한 개피의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것. 속세에서의 맛보다 비교할 수 없도록 더욱 감미롭습니다. 더욱 가벼워진 발길. 바람과 함께 이 낯선 자연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잃어버린 보석을 찾아. Lost Lake Trail.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집니다. 간밤에도 굵고 잦은 빗소리에 누구의 방문이 있나 싶었을 정도로 한번씩 심하게 차 지붕을 두드리며 흔들곤 했습니다. 산행이 끝난 저녁에 내리는 비는 아늑한 평화의 휴식을 마음에 안겨주는데 산행을 앞둔 아침의 비는 참 불청객이라 밉죠. 그래도 길은 나서야 하고 채비를 해야겠는데 야영장에는 화장실도 푸세식이며 펌프질해서 길어올리는 지하수외에는 전무합니다. 샤워 시설도 없으니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러 가는데 야영장의 길이 거의 물길이 되어버렸고 화장실만 덩그러니 섬처럼 떠있습니다. 가까이 차를 대고 도하하여 볼일보고 나와 뒷켠을 보니 숲 전체가 강이 되어 물이 콸콸 흐릅니다. 야생에서 샤워장이 따로 있어야 할것도 아니고 마침 저기 저 강물을 범람시켜 이곳 까지 끌고 왔으니 얼마나 편해졌습니까. 빙점의 기온도 아랑곳 없이 훌훌 벗고 샴프질에 비누칠에 시원하게 즐기는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거리낄 게 없습니다. 물기를 닦고 차에 앉으니 그야말로 날개 없어도 하늘을 날것 같은 이 뽀송뽀송한 느낌. 그렇게 비요일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바다가 있고 산들은 빙원을 이고 있으니 언제나 습한 땅일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2시간 남하하게 되는 Lost Lake 트레일 시작점을 찾아 나섭니다. 해안선이 끝나고 다시 이어지는 들길 산길. 색 고은 잎들이 꽃보다 곱고 색 바랜 잎들이 계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시간 가량 달리니 Kenai 호수가 나타나며 Homer와 Seward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오고 아담한 카페가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쉬어가라 유혹을 합니다. 한잔 커피를 마시며 창가에 앉아 호수를 바라봅니다. 빗줄기가 여전히 제법 굵습니다. 아침 마실을 나온 사람들. 산악 기후라 비가 잦아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한없는 여유로움으로 이 비를 즐기는 듯 합니다. 그런 이들과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문득 나를 깨워 갈 길을 챙깁니다. 오늘 걷기로 한 길은 알래스카 산악 칼럼리스트가 선정한 10대 트레일에 랭크된 Lost Lake 트레일입니다. 이름 그대로 잃어버린 보석 같은 호수를 찾아 나서는 길인데 12킬로미터의 길을 500미터 정도의 고도를 높이면서 오르면 그림 같은 호수풍경을 만날 수 있답니다. 이 호수로 가기 위한 시작점은 두 군데가 있는데 한 방향으로 가서 되돌아오면 자칫 권태로울 수 있으니 구간 이동식으로 종단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팀을 둘로 나누어 각각 다른 트레일 헤드에서 출발하여 중간 지점인 로스트 호수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자동차 열쇠를 교환하여 산행을 마친 후 서로 만나게 하는 것인데 대자연속에서 산행을 즐길수 있어 많이들 하는 방법이랍니다. 오늘은 오리지널 코스인 5마일 지점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그칠줄 모르는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날이 개일 기미도 없는지라 비옷을 챙겨입고 배낭 커버를 덧씌우고 묵묵히 산행에 나섭니다. 처음부터 나타나는 장애물은 많은 비에 불어난 개울물이 앞을 가리고 징검다리도 다 유실된 터라 그냥 축지법을 써서 마구 달려서 건너버립니다. 신기하게도 물에 젖지 않은 채 길을 오르는데 꾸준하게 호수를 향해 그리 어렵지 않게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밀림에서나 볼수 있는 나무들. 그리고 그 두터운 이끼류들. 이내 아바타가 날아 들 듯 인류보다 더 오래 존재해왔던 산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산도 기억할 수 없는 수억년의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입니다. 숲에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운이 있고 산이 내는 숨결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듯 나에게도 그 열정이 마음으로 전해옵니다. 무념무상으로 한참을 걸어 오르니 그 차가운 가을비 속에서도 몸에는 열이 나고 땀이 흥건해지려 할 때 그렇게 높진 않지만 물보라를 바람에 흩뿌리며 떨어지는 폭포를 만납니다. 땅에 닿기 전에 바람에 날리고 바위에 부서져 깨어져 흩어져버리니 신부의 면사포 같은데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는 폭포이나 오늘은 며칠을 두고 내리는 비 탓인지 그 폭포의 낙하가 제법 웅장합니다. 산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곳. 이렇게 오랜 비에 젖어 떨고 있는 자연물들을 보니 결코 죽은 것들이 아님을 알려주고 이처럼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것은 인생만이 삶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 나무와 바람 그리고 흐르는 저 물길마저도 살아있는 삶임을 알게 됩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뿌려대고 숲속 주위는 한층 더 어두워집니다. 시작점에 세워둔 곰의 공격을 주의하라는 경고판이 자꾸 뇌리를 스칩니다. 문득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도 듭니다. 출발 전에 확인된 두 대의 차량이 주던 안도감도 무디어 갈 즈음에 흙길을 만납니다. 제법 가파른 길이 진흙길로 되었으니 그만 미끄러져 버립니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손으로 먼저 짚었으니 그저 무릎만 적셨지만 수월한 길이 아닙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이 악천후에 무슨 아집으로 이 길을 끝까지 걷겠다고 나선 것이냐고. 행여 사고라도 난다면 나에게 의지하고 나에게 의뢰한 산 동무들에게 지구의 이방에서 그 아름다운 길들로 데려가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누를 끼치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환경의 광폭함은 조심하면 된다지만 정말 곰의 공격이라도 받게 된다면 더구나 이 지역 곰은 상대적으로 좀 순한 검은 곰 뿐만이 아니라 포악하기로 유명한 불곰도 있다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몸을 되돌려 하산을 하게 됩니다.

거대한 산맥. 수없는 해협으로 이어진 산과 바다의 이음으로 가득 채워진 작고 아름다운 항구 도시 시워드의 포구로 달려갑니다. 어느덧 비는 세우로 변했기에 해안선을 따라 나무로 바닥을 깔아 선착장에도 이르고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도록 길게 이어진 보드 워크를 따라 무심하게 걷습니다. 어부의 우스꽝스런 모습들, 대형 앵커. 돌고래와 인어들. 바다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장식한 부두의 길이 참으로 정답습니다. 그 길 끝에는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물씬 전해오는 어부의 그랜드 마스터 센터라는 건물이 보입니다. 추위와 비에 흠뻑 젖은 몸은 따스한 물로 씻을 온욕이 필요한진데 이곳에 유료 샤워시설이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그 차디찬 물결을 헤치며 살아가는 어부들이 항구로 돌아와 허기진 배와 갈증을 해소하기 전에 그래도 땀과 소금을 씻어주라는 배려. 덕택에 내가 호사를 누립니다.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밖으로 나오니 옅어진 구름사이로 군데군데 햇살이 비칩니다. 센터의 한쪽 벽면에는 분필로 써서 채워진 대형 낙서판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One thing before you die?”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바라는 것을 적어 놓도록 해두었는데 참 다양합니다만 유독 눈에 띄는 한 줄이 있습니다. 한글입니다. “자식들이 모두 잘되는 것” 북극을 가보고 싶다거나 알래스카에 이주해 살고 싶다거나 하는 조금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바램인데 반해 우리 한국민들은 자나깨나 자식걱정이 가득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눈물이 핑 돌며 우리네 부모님들의 가없는 사랑과 관심을 가슴 뭉클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게 모든 빛을 주고 온기를 주던 해가 빛을 거두고 사위어가는 저녁. 아름다운 일몰입니다. 검은 구름 가장자리를 붉게 물들이는 황혼빛이 문득 외로움에 젖게해 어부들이 즐겨 찾을 조금은 시끄럽고 비릿한 바다 내음도 나는 후미진 선술집을 찾아 모퉁이 창가 자리에 앉아 한 조끼 맥주에 따뜻한 스프를 시키고 밖을 봅니다. 바다 갈매기가 기륵기륵 소리를 내며 평화롭게 정박한 배위로 날아다닙니다. 새의 존재가 참 부럽습니다. 두발로 서야만 걸을 수 있고 그 발을 헛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존재. 그러나 새들의 여행은 무한하며 활기찹니다. 그래도 새들의 흉내를 조금 내면서 이렇게 낯선 곳으로 훨훨 날아와 걸으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태어나기 위함이고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함이고 다시 농익은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나이에 들면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날의 삶에 대한 후회로 좀 더 많은 모험과 여행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 토로하기도 합니다. 여행이라는 낯선 곳이자 모험의 장에 내 몸을 던져보는 것. 우리로 하여금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여행과 모험을 통해서 한걸음 나아가고 한길 더 성장을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더 긴 끈기가 필요하니 그 힘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고 기둥이 되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이 외진 동토의 나라 알래스카 한 변방의 부둣가 카페에 앉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내일의 여정을 꿈꾼답니다.



www.mijutrekking.com
미주 트래킹 여행사: 540-847-5353

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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