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4

명산은 때로는 그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꿈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그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가 마침내 그 품에 안긴다면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그리도 그립고 그리워하던 정인을 대하듯 울음보를 터트려버리지는 않을지.. 그래서 그 길은 발이 아닌 마음으로 걷게 될 것입니다. 알래스카 트레킹에서 가장 의미있는 그래서 알라스카 트레킹의 클라이맥스라 불려지는 길의 끝에 있는 Exit 빙하 지대의 Harding Icefield(빙원). 신성한 신들의 거처인 듯한 이곳을 오늘 드디어 오르려합니다. 푸른 하늘 바다처럼 펼쳐지고 그 위에 평화롭게 흐르는 조각 구름. 완벽한 날씨입니다. 이 빙하와 빙원에서 녹아내린 물들이 흘러 이룬 강물을 거슬러 달려가는데 거칠고 광막한 풍경이 또 다른 지구의 이방에 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9킬로미터의 길을 1000미터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니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주차하고 주섬주섬 여장을 챙기는데 거짓말처럼 비는 개고 햇살이 환히 비춥니다. 워낙 오락가락하는 해안 산악지대의 날씨지만 오늘 이렇게 천상의 날씨를 주니 다만 고마울 뿐입니다. 왜 하필이면 비상구 혹은 출구의 뜻인 Exit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아마 현실을 벗어나 신선의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닐까? 아니면 만년의 시간을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러 가는 출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의 답은 산을 오를수록 또 하딩 빙원으로 다가가면서 자연스레 얻어집니다. 이제 자연의 빗장을 열고 더욱 비밀스런 신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트레일은 150미터 고도에서 시작해서 Marmot Meadow가 펼쳐지는 2km 지점의 300미터를 오르게 되고 이내 절벽구간이 1km 정도 이어지는데 아득한 발아래 펼쳐지는 빙하의 장대한 흐름을 조망하며 오르게 됩니다. 그후 리지를 따라 하염없이 오르면 막다른 인간의 길이 나타나고 신선의 길이 시작됩니다.

산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꽃과 열매와 뿌리까지도 포함한 자연의 향취와 그 산을 찾는 사람의 내음도 향기로 전해옵니다. 계절의 부지런한 발길이 이곳 알래스카로 먼저 달려와 온 세상을 파스텔 물감색으로 물들이고 있어 이런 자연의 선명한 색들을 보며 나도 물들고 싶고 그 품에 안기고 싶다는 충동이 이는 시간들입니다. 계절의 탈바꿈을 가장 확연하게 눈치 챌 수 있는 요즈음 산으로 가는 포도 옆 가로수 위로 계절이 살포시 내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서서 두 다리로 걷다보면 온몸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바로 트레킹의 쾌락이 아닐까 합니다. 그 기쁨으로 산을 오르고 진한 삶의 노폐물을 땀으로 빼내면 자연은 도시의 감각을 일깨우고 일상의 느낌을 그대로 감성의 화폭에 가득 그리게 합니다.

방문자 센터를 출발해 가는데 길을 막아놓고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몇일전에 이길로 곰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방금 전도 아니고 몇일전? 그 곰이 아직도 몇일 동안 그 자리에? 한심할 정도의 그 호들갑스런 안전성을 애써 치하하며 애둘러 갑니다. 길을 꺾어 본격 등산로로 들어서면 그 수런함은 사라지고 한적하기 이를데 없습니다.초반 길은 숲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열대 온대 한대 등 여러 기후대가 모여 오랜 세월 키워낸 원시림으로 숲은 활기찬 생명력으로 풍요로운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만년설과 빙하가 있는 산이지만 습하기도 하여 초목을 풍성하게 키워내는가 봅니다. 물기 먹은 낙엽을 밟으며 갓길에서 안전 가드 역할을 해주는 바위들을 스치며 이리저리 에둘러 가는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나무들이 시야를 가립니다. 이렇게 우거진 숲길을 지날 때는 산들이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길섶의 소소한 것들에 마음을 줄일 입니다. 계절에 걸맞지 않게 환경에 어울리지 않게 야생화들이 제법 소담스레 피어 있는데 어쩌면 이 들꽃들은 계절과 기후를 망각하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나무를 따라 꽃을 따라 향기를 따라 쫒아가다 보니 어느새 나무들의 키가 땅으로 내려앉고 넓은 목초지가 나옵니다. 이제는 숨겨 놓은 빙하의 자락들이 보이고 뒤돌아보면 레저렉션 강이 해협으로 흘러가는 계곡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멀리 시워드의 해안 마을이 아스라이 보이고 황금색 들판으로 삶의 보따리들을 싣고 달려가는 차량들도 조그마하게 보입니다. 인간의 삶과 자연이 원래부터 일체였던 것처럼 그렇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너무도 짧은 여름 제대로 피워내지도 못한 알래스카의 야생화들이 마지막으로 저마다의 자랑으로 각색의 빛을 풀어 놓고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산 중턱의 들판에는 꽃보다 더 꽃다운 색으로 작은 나무들의 잎이 빛나고 있고 드물게 보이는 블루베리가 햇살에 영롱하게 반짝입니다. 멀리 베링 해를 건너오는 바람은 한기를 품고 있어도 아직은 내 마음에는 여름이 차지하고 있어 시원하기만 한데 바다 건너 첩첩하게 이어진 산들은 구름 띠를 두르고 있고 내륙으로 향한 산들은 만년설로 덮인 채 끝없이 이어지니 진정 산정으로 가는 길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여겨집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계절의 빛깔은 완연해지고 인생에도 쉼표가 있듯이 등반길에도 한 박자 쉬어가는 목 좋은 곳에 서면 발치에 펼쳐지는 알라스카의 넉넉한 풍경이 더없이 평화롭기만 하니 함께 포근한 마음의 정화를 얻게 됩니다. 철마다 그려놓는 자연의 그 아름다운 풍경화. 이 보다 더 완벽한 예술가가 있을까 여겨집니다, 계절이 바뀌는 이런 시절엔 더욱 더 수려한데 자연은 한술 더 떠 사계절을 화판에 모두 담아 낼 때도 있습니다. 비좁은 마음에 이처럼 평화가 깃들게 하니 산은 꽃과 나무만을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성장시키는가 봅니다. 하여 우리는 산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가는 곳이기도 하는 배움의 장입니다.

넓은 목초지가 나오고 붉은 단풍들이 바닥을 기어가는 위로 안개가 자욱합니다. 또 그 위에는 계곡을 타고 폭포가 흘러내립니다. 만년설이 뿌리는 폭포는 신이 내리는 축복. 그 물줄기가 영혼을 씻어주고 새 생명을 품는 듯 마음이 가볍고 새로워지니 이어지는 절벽길도 고개로 다가가는 가파른 길도 힘차게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한걸음 한걸음 떼기가 참 힘에 버겁습니다. 더욱이 서로를 북돋을 아름다운 동행도 없어 그저 이럴 때 오직 한 동무 내 안의 나를 토닥이며 산을 바라며 길을 오릅니다. 산은 좋은 친구이자 삶의 일부입니다. 기다린 듯 반겨주는 저 비경. 온산을 내리누르고 있는 구름과 비. 영겁의 시간동안 산마루를 지켜온 빙하. 자신을 녹여 빙하호를 만들어 우리 인간들에게 절경을 선사합니다. 산정을 적당하게 덮고 있을 것 같았던 빙원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 광대한 풍경에 속절없이 무장해체를 당한 채 발이 얼어 붙어버립니다. 공기마저 엄숙하게 가라앉은 이 순례자의 길 끝에서 나는 저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고 말없이 술 한잔 담배 한개피로 등정의 의미를 삼키고 내 뿜습니다. 더 이상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성산. 정상입니다. 바쁘게 달려가던 시간도 여기서는 쉬어가는 듯. 깊은 고요가 주위에 가득하고 머물고 가는 구름과 함께 사연을 나눕니다. 멀리 열흘 동안 열심히 달려 올랐던 모든 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가는데 하늘 한가득 채워진 구름에 가려 비록 눈으로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어느 방향인지는 가늠할 수 있어 마음으로 읽어냅니다. 발치 아래에는 우리가 걸어 온 길이 또렷이 보이고 이리저리 끝없이 이어진 인간의 길들이 정착민들의 고단한 삶을 내려놓은 채 정연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기나긴 겨울 이 동토의 땅에 끊임없는 혹독한 바람으로 나무 한그루 없이 삭막하지만 오늘은 계절의 끝자락에 서서 붉게 타오르는 산하를 보니 입추의 서정이 가득합니다. 순백으로 쌓인 시간만큼 고결한 산마루에 서니 오름의 고난도 한 줌 바람이 되고 비좁은 마음을 채웠던 욕심도 회한도 한 점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립니다. 저 구름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www.mijutrekking.com
미주 트래킹 여행사: 540-847-5353

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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