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5

무엇을 위해 길을 떠나고 또 그 길 위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주을 것인가? 그저 마음을 비우고 대자연 앞에서 서서 바라보거나 장대한 길 위에서 서서 눈을 감거나 장쾌한 산마루가 파도치는 산정에서 휘돌아 볼 때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지혜와 겸양을 채우려 합니다. 더욱이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대할 수 있는 이 광대한 알래스카에서는 나도 발가벗고 가림이 없는 감성으로 대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두발의 걸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기에 내 인생의 후반부 역사도 이 두발로 써 보리라 다짐해봅니다. 아침 햇살이 어렵사리 대양을 차고 산등성을 넘어오느라 시간이 제법 걸리나 봅니다. 날씨 따라 기분도 달라진다고 마른하늘에 희미한 별들이 남아 있어 가벼운 마음인데 삶의 하중에 역겨운 어부들의 새벽 단잠을 깨울세라 바람도 숨죽여 줍니다. 아침잠에서 아직 깨어나진 못한 산하를 오늘은 내가 깨우고 길을 나섭니다.

오늘은 알래스카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된 Canes Head Coastal Trail을 경험하러 갑니다. Miller’s Landing이라고 불리는 지명이자 사업체 명인 이곳에서 해안선을 따라 1킬로미터 정도 남으로 가면 Lowell Point가 나오고 이 곳 해변에서 잠시 밀려오는 정갈한 바닷물에 영혼을 세척하고서 출발하게 됩니다. 케인스 해드라는 돌출부인 곳 까지는 8마일(13킬로미터)을 걸어가야 하고 걸음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왕복 5km의 발품을 더 팔아 사우스 비치까지 갔다 오거나 더욱 장대한 풍경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 알파인 트레일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또 다른 5km의 사이드 트레일이 있습니다. 산행이 시작되면 왼편으로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 하는 바다를 두고 짙은 숲속 길을 2km 정도 가서 오른 만큼 급격히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가면 나무다리 길게 놓인 물을 건너고 Tonsina Point가 나오는데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경을 어루만지고 다시 숲길로 잠시 들어서면서 수만 년 전 시간으로 되돌아 온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곳은 늘 침수가 되는 탓에 나무로 짜서 높여놓은 길로 이어지는데 숲을 빠져 나오면 가슴이 탁 트이는 해안선이 나오고 그 모래톱을 따라 5km 가량 무념무상으로 걸어가면 파도가 깎아 만든 Derby Cove라는 바다 동굴이 그럴싸한 눈요기 감을 선사합니다. 해안선이 끝나 바위 언덕을 올라서서 이제는 해안 벼랑길로 3km 넘게 가면 과거 2차 대전시 태평양 전쟁 때 방어용으로 구축된 포진지가 구축된 Fort McGilvray를 품고있는 Canes Head라는 곳이 나오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좌우 풍광이 압권이라 이리도 기나긴 발품을 파는 것입니다. 여기서 2km 이상 더 가면 South Beach가 나오고 여름날 물놀이와 각종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야영장이 있어 야생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물때를 잘 맞추어야 하는데 5km의 해안선 길이 자칫 조수가 최고점에 달하면 길이 없어지고 육지 쪽은 절벽구간이 라 피할 곳이 없어 조난의 사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통과할 때는 항상 항해 예보를 확인하고 조수 간만의 차를 잘 숙지하고 통과해야 합니다. 기나긴 길 다시 돌아오기 무료하다 여겨지면 여름날에는 수상 택시가 운행되니 그 배를 타고 돌아오거나 아니면 그 배를 타고 가 산행을 시작하여 돌아 나오거나 하는 특별한 재미가 있는 트레일이기도 합니다.

은근히 경사가 있는 오래된 숲길을 걷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간혹 작은 폭포가 되어 내리기도 하고 그 물이 범람하면서 길들을 유실시켜 지층의 속살이 드러난 곳도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한 상록수들은 기나긴 겨울 동안 지고 살아온 눈의 무게에 눌려 모두들 등이 휘어져 있습니다. 삶의 하중이 얼마나 가혹하도록 무거웠었는지 알 수 있는 증표입니다. 언뜻언뜻 보이던 바다가 제법 인심을 쓴다 할 즈음에 길이 급격히 구부러지며 내리막길로 변하는데 특이한 것은 도랑마다 걸쳐놓은 나무다리를 그물로 감싸두어 미끄럼을 방지했다는 것입니다. 고무를 이용하지 않고 바다의 나라 알래스카 만이 갖는 특별한 방식이라고 여기게 되는데 그 물기 먹은 이끼들을 밟고서도 거뜬한걸 보니 그 성능은 아주 뛰어납니다. 조심스레 이리저리 돌아 내려오니 시야에 한가득 펼쳐지는 이 넉넉한 풍경. 맑은 빙하수는 바다로 흘러가고 고사목들이 두서없이 서있는 그 아래에는 억새풀들이 황금물결을 치고 있고 어깨동무를 한 산들이 머리에는 흰 눈을 이고 끊이지 않는 선을 만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문득 다리를 건너다 얕은 강물에 가득 채워진 검은 물체. 연어의 무리들입니다. 연어 산란기가 7월 한 시절이니 빨간 육질색의 야생 Red Salmon 을 잡아서 맛보려면 반드시 이 때 방문을 해야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알을 낳기 위해 머나먼 길을 돌아와 산란 후 죽어가는 연어의 일생. 회귀본능이라 하는데 이역하늘 아래서의 생활이 30년이 훨 넘어선 나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은듯 합니다. 포장마차가 그립고 친구가 그리운 요즘이랍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하던 천렵의 즐거움. 알래스카 연어잡이가 꼭 그와 같습니다. 한켠에는 초고추장 만들어 회먹을 준비하고 매운탕거리 대령하고 한켠에는 대형 잠자리채 같은 그물을 여럿이 힘을 합해 풍덩 물에 던지면 물반 연어반의 강에서 운좋으면 한번에 내 다리만한 크기로 두세 마리씩도 건져올립니다. 물론 외부인에게는 허락된 일은 아니지만 원주민들은 동계 식량으로서 포획이 허가된 일입니다. 그런 연어들을 보고 들끓는 인간의 포악함. 그길로 시워드로 달려가 봉막대 하나와 쇠스랑을 하나 사서 되돌아옵니다. 둘을 끈으로 연결해 삼지창을 만들어 물속으로 꽂으니 여지없이 옆구리에 찔린 연어가 건져집니다. 그 잔인한 쾌감. 기념컷 찍어라 누가 고기 받아 지켜라 더 잡을테니..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동행의 황급한 외침. 여기는 연어 보존 구역이래! 잡은 연어 방사하고 범행 당시의 흉기를 감추고 제 2탄의 난리 부르스 타임이 이어졌던 어이없던 추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길입니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면 기이한 장면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는데 나무들 마다 무슨 선인장처럼 두텁게 이끼들을 입고 있습니다. 나무며 바위며 땅이며 하늘이며 온통 오래된 선태식물인 이끼들이 전체를 덮어버려 도저히 현실이라 여길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도 이런 빼어난 풍경을 바라보며 고된 뱃길의 위안으로 삼았을테고 만선의 기쁨을 가득 싣고 돌아올 때에도 이 너울대는 억새와 바람 넣어 춤추는 풍선인형처럼 팔을 흔들어주는 이끼 입은 거목들의 환대를 받고 얼마나 우쭐하고 환희에 넘쳤을까! 물소리를 따라 걷는 길. 파도가 그어주는 선을 따라 걷는 길.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이 해안선 따라 뚜렷이 보입니다. 모래톱을 걷습니다. 모래라기에는 뭣한 검은 모래자갈 길. 검은 돌들이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세월에 마모가 되어 거친 모래가 되었습니다. 떠 내려와 붙박이가 되었는지 본시 그 자리에 있다 죽어버렸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고사목들이 해안선에 가득하고 저기 저 건너 편에는 빙하가 녹아 폭포수가 되어 떨어지니 더욱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풍치를 만들어 줍니다. 육지와 바다의 간격이 가장 작은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잠시 간식도 먹을 겸 배낭을 내려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온 한 젊은 커플에게 맥주를 권하니 좋아라 하며 넙죽 받아 마십니다. 이런 저런 의례적인 말을 섞다가 자기들은 이쯤에서 돌아가려 한다고 합니다. 물이 차오르는 High Tide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가는데 까지 가겠노라고 허풍을 떨고 다시 해안선을 걷습니다. 개를 데리고 온 한 중년 커플도 막 도착한 다섯 인도인 가족들도 돌아갈 기색입니다. 뱉어버린 말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짐짓 의기양양하게 나아갑니다. 이내 닿을 것 같은 바로 보이는 저 더비 코브가 왜 이리 길고 먼지 스스로에게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해안선을 통과하게 되는 동굴 앞에 다다라 한 숨 돌리니 그 때서야 시장기가 음습하니 부랴부랴 불을 지피고 해서 라면을 끓입니다. 소맥 한잔 타서 마시며 라면 한 포크 입에 걸치며 도착하면서 수위를 측정하려 지정해둔 바위를 확인하니 물이 제법 차오르고 있습니다. 만일 물때를 놓치면 다시 조수 간만의 차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아무도 없을 외딴 곳에서 몇 시간을 멍 때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리나케 주섬주섬 배낭 속에 집어넣고 그래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맥주는 바지 옆 주머니에 꼽고 라면 끓인 코펠은 왼손에 포크는 오른손에 들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달리면서 먹으면서 씹으면서 마시면서..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알래스카의 날씨. 구름이 두터워지더니 이제는 비까지 내립니다. 더욱 조바심에 남은 라면과 국물 버려버리고 출렁이면서 바지를 젖게 하는 맥주는 원샷으로 때리고 빈병 빈 코펠을 처치할 여유도 없이 그대로 양손에 들고 냅다 줄행랑을 칩니다. 걸어 온 만큼 되돌아가야 하는 길. 마음이 급하니 길은 더 멀어 보이고 온갖 불길한 상상이 다 되니 왜 나도 그때 같이 발길을 돌리지 않았을까하는 통한의 후회도 밀려오고.. 이러다 패닉 오는 거 아냐? 라는 염려까지.. 그러나 다행히 위험구간은 넘었습니다. 가장 좁다는 지점까지 오니 충분한 여유가 있어 절벽을 타지는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득한 길입니다. 가늠할 수 없는 길의 길이는 내 마음에 따라 달라 보이나 봅니다. 인간 만사 일체유심조라 했던가!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제법 성난 파도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척 하며 여유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또 다시 잰걸음으로 해변을 빠져 나와 예의 그 쥬라기 공원 숲속에 지어놓은 지붕있는 셸터에 들어가 비를 피합니다. 우의를 입고 배낭 커버를 씌우고 완벽하게 무장을 한 후 남은 술로 소맥 한잔 만들어 마시며 한모금의 담배를 피워 길게 내뿜습니다. 실은 안도의 깊은 한숨을 숨기기 위한.. 이 때쯤 또 한 줄의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인간 만사 무중부족 호사다마 라고...

지친 돗대를 내리고 쉬고 있는 부두로 오는 길에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하늘에서 부터 먼저 내리는 가을은 이곳 알래스카에서도 마찬가지 이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곳은 하늘과 땅 모두 일시에 덮쳐버리는 듯. 삽시간에 산하를 진한 금색으로 물들여 버립니다. 오늘도 사람의 향기가득한 포구의 선술집에서 젖어가는 하루를 접습니다. 가늘게 내리는 비에 하릴없이 젖고 있는 산하는 찻잔의 온기와 체내로 흘러 들어간 한잔 술이 녹아서인지 아늑하고 평화스럽게 보입니다. 끝 모를 트레킹의 유랑을 이어가면서 만나는 대자연과 그 여정에서 누리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자유.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자연과 나와의 평온한 이 관계. 그래서 나는 늘 여행을 꿈꿉니다. 어느새 한뼘 씩 붉어지며 황혼이 깃 드는 하늘. 스러지는 모든 것들이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면 슬프도록 아름다운데 계절도 노을도 인생도...



www.mijutrekking.com
미주 트래킹 여행사: 540-847-5353

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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