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권의 파타고니아. 툰드라를 걷는다. Yukon Territory의 Chilkoot 트레일 #1

가을이란 계절만이 특권처럼 지닐수 있는 청자빛 고운 하늘. 자유분방하게 찢어 놓아도 그대로 작품이 되어버리는 새털 구름. 영겁의 세월동안 덮고 있던 만년설이 녹아버려 지구 태초의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돌아온 바위산들. 그 산허리 수목 한계선 아래를 채운 무거운 색감의 사철나무들. 더불어 얼마나 오래 되었을지 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호수는 그 깊이 또한 가늠할 길이 없는데 짙은 에메랄드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먼지 폴폴 날리며 달리는 비포장길이 아련하게 호수를 따라 휘어져 가는데 포도 옆으로 물결치며 이어지는 자작나무들의 황금 물결. 이보다 더 완벽한 가을 풍경은 없을 것 같은데 이제 겨우 9월로 들어선 지금 이곳은 바로 캐나다와 알라스카가 접한 유콘 테러토리입니다. 유콘주는 동쪽으로 캐나다 노스웨스트 주 남쪽으로는 캐나디안 로키가 속한 브리티시 콜럼비아 서쪽으로는 미국의 알라스카주와 접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도시는 캐나다 화이트호스(Whitehorse)인데 이전에 유콘 준주의 주도였던 골드러쉬로 북적이던 크론다이크의 이웃 도슨시티로 부터 1953년 화이트호스로 바뀌었습니다. 약 2만5천명이 거주하고 있는 화이트호스에 첫발을 디디면 병풍처럼 두른 산과 유유히 흐르는 유콘 강 덕분에 아늑한 느낌이 들고 수많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야생지이면서 또한 현대적인 편의시설을 두로 갖춘 곳입니다. 유콘 베린지아 자료관을 방문하면 생경한 역사의 소산물들을 경이롭게 볼수 있는데 빙하기 이후에 존재했던 털로 뒤덮인 맘모스와 장검처럼 생긴 송곳니를 지닌 호랑이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이런 낯선 오지에 오게됨을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며 빌린 차량으로 덜컹거리는 길을 따라 알라스카 Skagway로 가기 위해 국경쪽으로 다가갑니다. 로키 트레킹 한팀과 작별하고 로키의 3대 백팩킹 명트레일인 Skyline, Tonquin Valley와 Berg Lake 를 한꺼번에 종주하기로 작정하고 기다려왔었는데 허리 부상으로 함께 하기로 했던 동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취소하게 되었죠. 다시 열흘 뒤면 2차 팀들이 오는데 그동안 빈 날들을 무엇을 할것인가 고민하고 있다가 근처 어디에 가볼만한 곳의 검색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떠오른 Chilkoot Trail. 늘 접근이 쉽지 않아 인식의 저편에 두었었는데 찾아보니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또 이곳 캘거리에서 논스톱 항공이 있다는 발견에 지체없이 티케팅을 해버렸습니다. 미지의 곳에서 상상치도 못했던 보물을 발견한 때처럼 기쁘고 부푼 마음으로 유콘강을 따라 달려갑니다. 유콘주의 이름은 이 강을 따서 지어진 이름인데 이곳 원주민어로 '큰 강' 이라는 뜻입니다. 이 자그만한 도시를 벗어날 즈음에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부부 마라토너를 보게되는데 뒤이어 아들이 분명한 청소년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옵니다. 대단한 가족들이라 부러운 마음으로 길을 터주는데 이내 뒤를 이어 계속 러너들과 마주치게 되어 아예 정지하거나 간격이 벌어진 지점에서는 서행을 하게됩니다. 마라톤 대회였습니다. 확인한 참가자 등판 일련 번호가 6백번이 넘는 행렬은 상상을 초월하도록 길었고 그 때문에 예정했던 이동 시간을 한시간을 허비해버렸습니다. 달리는 사람들의 면모도 매우 다양한데 남녀노소 뿐만 아니라 홀쭉이 뚱보에다가 우스꽝스러운 분장이나 치장을 했고 갓길에 진을 치고 응원하는 가족들의 환호와 퍼포먼스도 볼만한 특별한 축제였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이땅에서는 매년 이 화이트호스에서 출발하여 알라스카 페어뱅크스까지 1,600km를 달리는 유콘 퀘스트 국제 개썰매 달리기도 열리는데 이런 통토의 땅에서도 사람사는 맛을 만들어가는 이곳 사람들의 지혜와 여유가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런 기분좋은 광경들을 읽으며 가을옷을 입은 나무들이 도열한 포도를 달리는데 자꾸만 풍경들이 쉬어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휘도는 길마다 새롭게 펼쳐놓는 유콘의 가을 풍경들. 그 풍경에 반해 갓길에 차를 세우는 횟수가 잦아지는데 또 하나의 내가 꾸짖습니다. 돌아올 때도 이길로 올텐데 갈길도 바쁜데 또 한번의 기회가 있지 않냐고. 그 후로는 그저 잠깐씩 눈길만 주며 달리는데 갑자기 눈에 확 감기는 사인판이 다가옵니다. Calibue Crossing! 화이트홀스에서 스캐그웨이로 가다 빠지면 빼어난 관광지로서도 각광받는 Carcross 지역에는 괄목할만한 다양한 트레일과 명산이 숨어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접근성 때문에 갈수 있을까 하면서도 욕심을 내왔던 칼리부 크로싱이라는 세계적인 트레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른 가을날 아침. 물안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툰드라의 들판. 황금색으로 물들은 자작나무 군락지를 배경으로 수만마리의 칼리부 떼가 서서히 이동을 하는 그 광경을 상상해보시라. 그 웅대한 대자연의 서사시. 상상만으로도 내 가슴이 뜁니다. 일주일 가량을 야영하며 야생의 속살깊이 들어갔다오는 나만이 꿈꾸는 나만의 샹그릴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군침을 흘리며 또 내 트레킹의 도반들과 다시 이곳을 찾을 그때는 꼭 이길도 함께 걸어야겠다며 다짐을 합니다. 이러다보니 어느새 국경을 넘어 소담스런 포구가 있는 Skegway에 도착했습니다. 우선 방문자 센터에 들러 여러가지 자료들을 확보하고 칠쿳 트레킹을 관장하는 트레일 센터로 들어섭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레인저에게서 종주 퍼밋을 받아내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이미 시즌 끝물이라 신청자들이 별로 없기 때문인데 귀한 레인저와 일대일 교육을 받고 20분 짜리 비디오를 시청한 후 종주 퍼밋을 수령하며 마무리짓습니다. 거리로 나오니 어느새 인파들로 가득 북적대는데 이 마을이 알라스카 대형 크루즈 선박의 기항지라 마침 크루즈 한대가 입항하여 천명 이상의 승객들을 풀어놓았기 때문입니다.주로 기념품 가게, 선물과 보석 가게 그리고 겔러리아로 꽉찬 메인 스트리트에는 차도까지 꽉메운채 도시는 생기가 넘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세기가 넘어가는 골드러시 시대. 일확천금을 노린 이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배를 타고 알래스카의 이 스캐그웨이로 왔습니다. 여기에서 육로로 유콘강 기슭을 따라 화이트호스로 걸어간 뒤 다시 배를 타고 ‘금의 도시’ 도슨 시티로 향하곤 했답니다. 하루가 지나면 집 하나가 지어지고 선술집이 생기곤 했던 스캐그웨이는 지금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방문객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입니다. 중앙통격인 브로드웨이 거리를 따라 기다랗게 이어지는 골드러시 시대의 건물들이 즐비하며 이것을 잘 활용하여 상가나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 시대 의상을 차려 입은 주민들이 반갑게 맞이하니 아련한 향수에 젖게도 합니다. 번성기에는 4만명이 이 곳에 정착하면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니 황금의 위력이 예나지금이나 변함없음이 한편으로는 서글픈 심정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랬던 지금의 스캐그웨이 주요 산업은 아무래도 관광업인데 매년 여름시즌이면 버스를 비롯하여 연간 400회 이상 운항되는 크루즈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하루에 최대 5척의 거대 크루즈가 입항해서 뿌려놓는 관광객 수가 8천명에 이르니 스케그웨이 주민의 10배인 셈입니다. 이곳에 정착하며 첫 번째로 지어진 선술집이었던 역사적인 건물 마스콧 살룬 박물관을 비롯하여 유서 깊은 거리를 함께 휩쓸려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 역사의 향기도 맡아봅니다.

아침. 여유있게 길을 나서 대형마트에 들러 캠핑에 필요한 것들과 식자재, 과일들을 장봐서 이 마을에서 16km 정도 떨어진 트레일이 시작되는 다이아(Dyea)로 달려갑니다. 해안 산맥이 수분을 차단하니 이 지역의 하늘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는데 상쾌한 기분으로 종주에 임할수 있겠습니다. Dyea는 이들 원주민 말로 짐 같은 것을 싸(to pack)는 행위를 뜻하는데 1896년 도슨 시티 근처의 보난자(Bonanza) 강에서 금이 발견된 후 그 짧았던 골드러시 시대 이방인들이 무더기로 몰려와 채광 물자나 인력을 내리고 또 여기서 머나먼 여정을 위해 봇짐들을 꾸려 크론다이크로 향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이름지었나 봅니다. 고작 백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신기루같은 도시. 가장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가 또 가장 순식간에 없어져버린 도시로 회자되고있습니다. 국립 히스토릭 사이트로 보존되는 이 옛터에는 그저 건물의 잔해나 볼수 있고 황금향의 꿈을 안고 왔다가 머나먼 타향 동토의 대지에 잠들어버린 이들을 묻어둔 공동묘지만 커다랗게 남아 있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엘 도라도의 꿈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이 역사의 현장에서 느끼게 되는 교훈입니다.

Taiya 강을 건너는 다리 바로 입구에 칠쿳트레일의 들머리가 있고 상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진 하나 찍고 잠시 후 해안 우림지역의 숲으로 들어서서 강을 따라 걷는데 Taiya가 외롭지 않게 줄곧 곁에 있습니다. 때론 바짝 붙어서 때론 나만의 시간을 주면서 저만치 떨어져서 그렇게 이 트레일의 최고 정점인 Chilkoot Pass까지 이어지는데 수시로 마주치는 새얼굴에게 인사말을 던져야 합니다. 숲은 깊고 넓고 어두운데 자작나무와 전나무류들이 이룬 숲으로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우거졌습니다. 처음 Saintly Hill로 오르는 5백미터 정도 구간은 매우 가파른데 여기에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의도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 후 오른만큼 급강하하는데 2km 지점의 계곡바닥에는 30미터 길이의 철교가 놓여져 있는데 강물의 수위가 아주 깊지만 차분하게 유영하는 연어의 무리도 보입니다. 4km를 넘게 평지를 걸어가니 Beaver 연못을 에둘러 지나는 보드워크가 깔려져있고 두명의 공원 관리인이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로 말을 건넵니다. 예전에는 이 구간이 툭하면 무릎까지 차는 물때문에 산객들이 가장 꺼리는 곳이었노라고도 합니다. 적막한 산길에서 오랜만에 접한 인기척을 가능한한 오래 즐기고 발길을 돌리는데 이제는 듬성듬성해진 수림 사이로 산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Irene 빙하도 인사를 건네오는데 이 지역에서 Ferebee, Chilkat 빙하와 더불어 유일하게 이름이 지어진 빙하입니다. 알래스카의 대부분의 빙하와 마찬가지로 아이린도 점점 녹아들며 초라해지는데 그 안타까운 눈물로 계곡을 따라 펑펑 울고 있습니다. 8km를 걸어 첫번째 캠프장 시설이 있는 Finnegan's Point에 도착했고 출출해진 속을 채우려 중식을 취합니다. 허리와 오른쪽 다리에 다소 무리와 통증이 오지만 거의 평지길이어서 견딜만 한데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장 무거운 식단으로 탁자에 자리잡고 버너로 취사를 합니다. 그래야 끓인 라면에 햇반과 김치지만 달콤한 식사를 즐깁니다. 그 시절 1897년 Pat Finnegan이라는 사람과 그의 두 아들은 이곳에서 페리 서비스를 시작했고 나중에 이곳으로 접근하는 습한 지역에 도로를 건설하고 유료로 운영했다하며 지금은 그 시설들을 이용하여 캠핑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목적지가 아니라 몸이 허락하는 지점까지 가야하는지라 지도를 보고 일단 다음 캠프장인 Canyon City로 향합니다.


www.mijutrekking.com
미주 트래킹 여행사: 540-847-5353

북극권의 파타고니아. 툰드라를 걷는다. Yukon Territory의 Chilkoot 트레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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