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강진...가슴 쓸어내린 후쿠시마 주민들

일본에선 옛날부터 두려움의 대상으로 꼽는 4가지 있다고 한다.

천둥, 화재, 아버지(오야지·親父), 그리고 지진이다.

네 가지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대상은 지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상대적으로 지진 안전지대에 살아온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겪는 지진에 대한 공포감은 익숙지 않으니 일본인보다 클 수밖에 없다.


먼 곳에서 일어난 지진의 파동이 다가오면 물침대 위에 누워 있는 느낌이다.

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실내에 있을 때는 벽 쪽에서 먼저 '끼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몸을 살짝 흔들어 준다.

그때의 느낌은 전율케 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기분이 묘해지면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13일 밤 11시 넘어 후쿠시마현 앞바다를 진원으로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큰 흔들림을 일으킨 지진은 기자가 도쿄 생활을 2년 넘게 하면서 겪은 지진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간 간간이 경험한 보통 지진은 살짝 스치고 지나는 듯했지만, 이번 지진은 끝나기를 기다려도 격렬한 흔들림이 멈추지 않았다.

진앙이 300㎞가량 떨어진 곳이었지만 거실 안에 널어놓은 빨래가 팔랑팔랑 날릴 정도였다.

일본 기상청은 애초 이날 지진의 규모를 7.1로 발표했다가 7.3으로 상향했다.

10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쓰나미를 동반해 도호쿠 지역에 엄청난 참사를 야기한 규모 9.0의 지진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일본 기상청이 발표하는 진도 기준으로는 동급 수준이었다.

후쿠시마현 일부 지역에서 전날 최고로 관측된 진도 6강은 체감 기준으로는 최고인 진도 7과 같다.

서 있기가 불가능하고 기어서 움직여야 할 정도의 흔들림이 전해져 몸이 내동댕이쳐질 수 있는 격한 진동이다.

일본 혼슈(本州) 지방 거의 전역을 뒤흔든 이 지진으로 진앙에서 가까운 후쿠시마현을 지나는 도로 곳곳의 주변 토사가 무너져 내려 교통이 두절하고 대규모 정전 및 단수 피해도 생겼다.

흔들림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떨어진 물건 등에 맞아 다친 사람은 150여 명으로 집계됐다.

다만 사망자는 14일 오후 7시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지진의 세기를 생각하면 불행 중 천만다행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일본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의외일 수도 있다.

지진이라고 하면 으레 멀쩡한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풍경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후쿠시마현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고속도로는 조반(常磐) 선과 도호쿠(東北) 선이 있다.

조반선은 이번 지진으로 일부 구간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불통 상태가 됐지만 도호쿠선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

기자가 승용차 편으로 도호쿠선을 타고 전날 진도 6약(서 있기 어려운 수준)이 관측됐던 후쿠시마 고리야마(郡山)시에서 '의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이노 유이치(淸野裕一·50) 고리야마 시청 방재 위기 담당 주임 계장은 이번 지진의 강도에 비해 피해는 적은 것 같다는 지적에 두 가지를 거론했다.

하나는 10년 전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건물의 내진 기능을 키우는 정책을 한층 강화했고, 이번 지진의 진동 지속 시간이 훨씬 짧았다고 했다.

그는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 외장 등이 훼손될 수 있지만 노후 주택이 아니라면 웬만한 지진으로 무너지는 건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로 무서운 것은 지진 후의 예상을 뛰어넘는 쓰나미라고 했다.

이번 지진은 쓰나미를 일으키지 않았다.

일본 고속열차인 신칸센(新幹線)이 정차하고 재래선 열차역으로도 활용되는 고리야마역은 이날 한산한 모습이었다.

파괴된 전신주 보수와 선로 안전 점검 등을 위해 이날부터 후쿠시마로는 신칸센과 재래선 운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고리야마역 광장에 설치된 방사선 측정기인 선량계는 정상치 범위인 시간당 0.131μSv(마이크로시버트)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곳은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직선거리로 약 55㎞ 떨어져 있다.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전날의 강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를 일으킨 10년 전의 대지진이 떠올라 놀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도 비교적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곳곳에서 시설물이나 석물(石物)이 훼손되는 등 크고 작은 물적 피해가 발생했지만 적어도 사망피해는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동일본대지진 때는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현 등 태평양 연안 마을을 쓰나미가 덮친 영향으로 작년 12월 확인된 사망자가 1만5천899명, 행방불명자는 2천527명에 달한다.

고리아먀역 앞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다카하시 후미코(高橋文子·50) 씨는 "어제 지진으로 선반 위쪽에 진열해 놓은 신발이 모조리 바닥으로 쏟아져 정리하느라 무척이나 바빴지만 인명피해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10년 전에는 흔들림이 수 분(分) 정도로 꽤 오래갔어요. 이번엔 1분가량 진동이 있었던 듯해요. 동일본대지진도 겪었는데요."

후쿠시마에서 만난 거리의 일본인들은 이번 지진으로 놀란 가슴을 인명피해가 없다는 사실로 억누르는 듯했다.

한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놀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10년 전 대지진만큼은 아니지만 '유레'(흔들림)가 심했거든요."

이 기사를 쓰던 중인 오후 4시 31분께, 4시 59분께 등 여러 차례에 걸쳐 후쿠시마의 지반이 계속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일본 기상청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오후 4시 59분께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일어난 지진 규모는 4.3이지만, 진도3 이상(실내 거의 모든 사람이 흔들림 감지하는 수준) 관측된 지역은 없다고 발표돼 있었다.

그런데 기자는 몸이 푹 꺼지는 느낌을 받았고, 어느덧 지진 민감 체질로 바뀌어서 그런지 심장 고동은 저절로 빨라졌다.

이날 아침 후쿠시마 출장길에 오르기 전에 도쿄에서 만난 택시 기사 혼다 마사루(本多勝·74) 씨는 '일본 국민은 지진이 발생해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고 기자가 건넨 덕담에 "워낙 자주 겪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가 덧붙인 말은 이랬다.

"한국 사람이죠. 한국은 지진 안 나잖아요, 땅이 딱딱해서(堅い)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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