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가디언 일요판 업저버 골든글로브 수상 '미나리' 정이삭 감독 인터뷰

"우리가 극복하려 했던 주요 장애물은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남는 방법이었지, 외부에 있는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 아니었어요. 인종차별은 분명히 존재했고 저도 끔찍한 일들을 겪었지만 돌이켜보면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게 더 어려웠어요."

1980년대를 배경으로 미국 남부 아칸소주에 한인 가정이 정착하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로 미국 양대 영화상으로 꼽히는 골든글로브에서 수상한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42) 감독은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업저버가 7일(현지시간) 공개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1978년에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아칸소 시골 마을에서 자란 정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제작한 자전적 영화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기 일주일 전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미나리'에는 정 감독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도 등장하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그가 몸소 체험한 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제목으로 사용한 미나리 역시 정 감독을 길러준 할머니가 아칸소 농장에 심어 기른 풀이라고 한다.

업저버는 정 감독이 "음식에 약간의 자극(kick)을 추가하고 싶을 때 넣는 식물의 일종"이라고 소개한 미나리가 "다른 식물들이 힘겹게 자라는 곳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허브"이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뿌리내리려 분투하는 한국인 가족을 묘사하는 영화 제목으로 적절하다고 썼다.

극 중에서 손주를 돌봐주려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할머니 '순자'(윤여정 분)는 아이들에게 욕하기를 서슴지 않고, 화투 치는 법을 가르치며 아이들을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드는데 이 모습은 정 감독이 기억하는 할머니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할머니는 많은 측면에서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어린아이 같았어요. TV에서 우리가 봐왔던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죠. 게다가 매우 젊었어요. 50대 초반이었을 거에요. 우리한테 욕을 하고, 도박하는 법을 알려주는 젊은 여성으로 보였어요."

정 감독은 자신이 기억하는 그때의 할머니보다 20살은 많은 배우 윤여정이 소화한 연기를 "정말로 사랑했다"며 윤여정을 "한국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으로 이름나있고, 그로 인해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는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를 속이지 않는, 대단한 연기자"라고 치켜세웠다.

업저버는 1990년대 중반 아프리카 르완다가 겪은 내전을 주제로 제작한 영화 '문유랑가보'(2007)로 데뷔한 정 감독이 첫 영화치고 야심 찬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평했는데, 이를 두고 정 감독은 "직업을 어떻게 꾸려가느냐에 있어서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미술치료사인 아내가 르완다에 일하러 갈 때 동행하면서 탄생한 이 영화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으며 화제가 됐지만, 차기작인 '럭키 라이프'(2010)와 '아비가일'(2012)은 상대적으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이 작품들은 아방가르드 했다고 말하고 싶다"는 정 감독은 두 영화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러시아),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 허우샤오셴(대만) 감독과 같은 거장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며 "아직도 그들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적합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요새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등으로 미국 할리우드를 빛낸 빌리 와일더 감독의 작품을 즐겨본다며 "예술영화가 지나치게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나로서는 머릿속에서 조금 빠져나와 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정 감독은 영화감독의 길을 포기할까 떠올린 순간도 있었지만 "아칸소에 있는 내 고향 친구들과 우리가 함께 본 모든 영화를 생각했고, 그 친구들이야말로 내가 그 어떤 관객들보다 함께 교감하고 싶은 관객이었다"는 생각에 이르러 '미나리'를 제작하게 됐다고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실사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정 감독은 캐시 옌, 룰루 왕, 클로이 자오 등과 같이 미국 주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영화감독의 새로운 세대의 일부라고 업저버는 평가했다.

"그 덕분에 많은 용기를 얻고 있어요. 아시아계뿐만 아니라 흑인, 중동 출신 영화 제작자들(이 만든 작품)을 많이 보면 볼수록 이 나라를, 인류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미나리'가 거기에 한몫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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