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

중국 상하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4년 8월,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을 찾아 당서기인 리위안차오(李源潮)를 인터뷰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그가 건넨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뭔가 느낌이 왔습니다.

'원조(源潮)'

1950년 11월 태생인 리 서기의 부모는 그해 6월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조선을 돕는다'는 '援朝'와 발음이 같은 '원조(源潮)'로 이름을 지었다고 현지 관계자가 귀띔합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중국인들에게 조선(북한)이란 이런 존재였구나'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와 가정과 나라를 지킨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궁지에 몰린 김일성은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중국군의 파병을 간청합니다. 박헌영도 직접 베이징을 방문해 파병 요청을 합니다.

마오쩌둥은 공산당 정치국 회의를 엽니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물론이고 지금의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 1913~2002)도 참석합니다.

강대국 미국이 이끄는 유엔군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만큼 중공 지도부 상당수가 한국전 참전에 반대합니다. 당시 마오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군과 오랜 내전을 딛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오는 '항미원조, 보가위국' 8자를 강조하며 참전을 밀어붙입니다. 그러면서도 중국 정부나 공산당 군대가 아니라 의용군인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支援軍)' 형식을 채택했습니다. 미국을 의식한 겁니다. 항일전쟁 때 부총사령을 지낸 펑더화이(彭德懷)가 파견됐습니다. 그는 북한군까지 포함해 '중조연합군'을 지휘했습니다.

10월 19일 미군과 한국군이 평양으로 밀고 들어갈 즈음 동북 최정예 중국 인민해방군 13병단이 야밤을 이용해 압록강을 넘습니다. 전격적인 중국군 참전 이후 전세가 다시 역전됩니다. 때로는 인해전술, 그리고 야간을 이용한 신속한 기동전술로 무장한 중국군의 기세에 눌려 유엔군은 38선 이남까지 밀립니다.

중조연합군은 1951년 1월 4일에는 다시 한국의 수도 서울을 점령합니다. 한국 정부와 많은 민간인은 그 추운 겨울날 기약 없이 남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1·4후퇴'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북한에 있던 중국인민지원군은 17개 군단에 장갑병, 철도병, 후방병참부대 등 100만명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중국군 인명피해는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전사 18만4128명, 부상 71만5872명, 실종 2만1836명, 합계 92만1836명(통일조선신문)으로 집계됩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1922~1950)도 1950년 11월 25일 미군 전투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전사했습니다. 그의 묘는 지금도 북한 땅에 있습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과 함께 중국과 북한의 특수관계를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하는 게 바로 '항미원조 보가위국'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9월 12일, 마오쩌둥은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제24차 회의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38선을 수복하지 못했더라면 전선은 아직도 압록강과 두만강, 선양, 안산, 푸순에 머물러 있어 이 지방의 인민들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최강 미국과의 전선을 중국 국경이 아닌 한반도 중간쯤으로 설정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북한 땅은 미국과의 거리두기를 위한 공간이 됩니다. 결국 '항미원조'는 명분이었고 실질적인 참전 원인은 '보가위국', 그러니까 중국 땅을 미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오는 한국전쟁 정전 이후에도 34개 사단 40만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북한에 체류시킵니다. 북한이 전쟁의 폐허에서 재건하는 동안 중국군이 휴전선에서 사실상 미군·한국군과 대치한 겁니다. 중국군의 철수는 단계적으로 진행됐고, '8월 종파사건'이 일어난 1956년을 거쳐 1958년 말에 매듭지어집니다.

2016년 중국 대륙 전역에서 '나의 전쟁(我的戰爭)'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홍콩출신 감독이 한국전쟁 당시 '전장창작조' 조장으로 전선을 누볐던 원로작가 바진(巴金.2005년에 101세로 사망)의 작품을 토대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 국내용으로 제작된 홍보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있는데, 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 단체관광에 나선 중국노인들이 즐겁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한복을 입은 한국여성 가이드가 서울을 소개하려 하자 노인들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는 한청(漢城.서울의 옛 중국식 표기)에 와봤어"라고 말합니다. 가이드가 "여러분 여권에 그런 기록이 없다"고 하자 "그땐 여권이 필요 없었다. 홍기(붉은 깃발)를 들고 왔었다'는 겁니다.

이 노인들은 바로 한국전쟁 당시 공산주의 선전영화의 주역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가 어떻게 홍기를 들고 한청에 들어왔는지를 알려면 이 영화를 보라"면서 일제히 외칩니다. '나의 전쟁(我的戰爭)!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

이 영상을 놓고 중국 내외에서 일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과거가 아닌 현재까지도 중국인들이 어떤 시각으로 한국전쟁, 나아가 한반도를 바라보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원조'의 주인공, 리위안차오는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2013년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부주석에 오릅니다. 그리고 7월에는 평양에서 열린 북한의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기념행사에 중국을 대표해 방문합니다.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60년' 열병식에 김정은 위원장과 주석단에 나란히 섰습니다. 조선중앙TV를 통해 그 장면을 보는 맘이 복잡했습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두 강대국이 '고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70년, 여전히 분단도 해소하지 못하고 남북 대치 중인 우리는 과연 어떤 운명을 개척해야 할까요. 영화 '나의 전쟁'을 선전하며 그 노인들이 외쳤던 구호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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