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치인 - 한국

경력 및 이력

심상정(沈相奵, 1959년 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고,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이후에, 진보신당을 창당하여, 노회찬 등과 진보신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또 이정희, 유시민 등과 통합진보당을 창당하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맡았으나 부정 경선 사건이 발생한 이후 통합진보당을 나와 정의당의 창당에 참여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 덕양갑에 출마하여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5년 7월 제3대 정의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 갑에 출마하여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7대 국회의원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여러 활약이 있었으나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 반대에 적극 나서면서 벌인 논쟁들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권영길, 노회찬과 경쟁하여 권영길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여 2%차이로 석패. 이후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격랑에 휩싸이면서,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다.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출당 등을 건 혁신안이 결국 당내 NL계의 반발로 부결되자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노회찬, 조승수 등과 진보신당을 창당하여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 재선에 실패했다. 국회의원 낙선 후 다시 노동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되었으나,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하여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운동을 벌였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경기도 지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국민참여당후보로 출마한 유시민 지지를 선언하고 마지막에 사퇴한다. 이를 계기로 진보신당 내부는 격론이 벌어진다. 이후 진보대통합 과정을 거쳐 2012년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고양시 덕양구 갑 국회의원에 매우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어 4년만에 국회에 재입성하였다. 2.3. 진보정의당 창당 2012년, 5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통합진보당이 내외적인 갈등과 부정 경선 사태로 탈당, 진보정의당을 창당, 이후 10월 14일, 대선출마 의사를 밝혔으나 야권 단일화를 위해 당시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받은 민주통합당 문재인후보를 지지하고 후보 등록을 포기한다. 이후 정의당의 원내대표로서 활동하다가, 2015년 6월 8일자로서 원내대표의 임기를 마치고 당대표 선거에 참여, 1차 선거 때는 노회찬 후보와 큰 차이로 2등을 득표했지만, 결선에서는 노회찬 후보를 앞서서 당선하여 당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2년 임기의 정의당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일방적인 노동개혁 강행을 골자로 한 기자회견을 하고 온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2015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이 폭풍 사자후를 토해내어 화제가 되었다. 이 영상을 토대로 만든 loose your 임금피크제란 영상도 나왔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요한 건 대선에 앞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살아남는다면 진보정당 최초 3선 의원이 되지만,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과의 대결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2016년 2월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8% 정도 앞서고 있었다. 만약 야권 연대가 무산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들과도 대결해야 되므로 더욱 힘든 싸움이 예상되었다. 2016년 2월 23일부터 시작된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국면에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당연하고 마땅한 결정이라고 발언하였다. 당의 상임대표직을 맡고 있어 필리버스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을 격려하거나 새누리당 의원들의 방해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 필리버스터 마지막 날인 3월 2일 정의당 마지막 주자로서 필리버스터 연설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준 후보와 단일화가 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반수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하며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를 16%p 이상 따돌리고 압승을 거두며, 이날 승리한 같은 당의 노회찬 의원과 함께 한국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중진 의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심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심상정에게 거의 몰표가 쏟아진 수준이었고, 기존 19대 총선에서 손범규 후보가 우세했던 농촌 지역들 중에서조차 단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신승하긴 하지만 모두 이겼다. 그 기반에는 꾸준한 지역 의정활동과 농촌 지역 개발이 주요 요인으로 뽑힌다. 탄탄한 지역기반을 보여줌으로써 의정활동에서 큰 흠이 없는 한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진보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던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인사였으나 주요 진보 인사들이 여러 사건들[9]에 휘말려 피해를 입고 정치권에서 은퇴하거나 물러난 사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결과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선 노회찬과 함께 진보정당의 독보적인 중량급 인사로 성장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만 당대표로서 정의당의 2016년 20대 총선 승리를 견인했어야 하는데, 단 6석만을 획득하는 데 그치며 전체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20대 총선이 지난 19대 총선과는 달리 비례대표가 7석 축소된 데다, 국민의당과의 단일화는 물론 더민주와의 단일화마저 실패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의당 자체의 지지기반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2.4. 20대 국회 활동 정무위원회에 배정되었다. 2016.06.18 성과 연봉제를 두고 박근혜 정부야말로 저성과자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2016.06.23 영남권 신공항 처리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잘한 일이라 칭찬했다. 2016.06.28 CEO 등의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30배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는 일명 '살찐 고양이 법'을 발의했다. 2017.03.04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을 제정했다. 심 대표가 19대 및 20대 총선에서 제압한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은 헌재 심판에서 박근혜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2017년 1월 1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슬로건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이고, 노동개혁, 재벌개혁, 탈원전 국민투표,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현, 국방개혁, 선거개혁[10] 등을 주요 공약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