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청와대 대통령정무특별보좌관 - 한국

경력 및 이력

김재원은 1964년 11월 26일에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은 그의 선조들이 조선 예종 즉위년 무렵부터 정착해 '대대로 살던 곳'이다. 하령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안평중학교에 입학하였다가 평리중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1983년에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1988년에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하여 1990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석사장교(예사16기)로 육군3사관학교에 입대해 육군소위로 전역했다. 그는 대학 4학년이던 1987년 제31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1988년부터 총무처, 내무부, 경북도청, 국무총리행정조정실(현 국무조정실)의 행정사무관으로 약 7년간 근무했다. 국무총리실 근무중이던 1994년 제36회 사법 시험에 합격하여 1995년부터 1997년에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부산지검, 대구지검포항지청,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재직하였다. 정치 활동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경상북도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였으며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 법제사법위원, 행정자치위원을 지냈다. 또 같은 기간 동안 한나라당의 기획위원장과 정보위원장을 맡아 일했으며, 특히 2006년 5월의 지방선거 당시 당의 클린공천감찰단장을 맡아 당내 공천비리를 일소하는데 기여했다. 한편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경선룰 협상의 대리인, 검증대리인 및 대변인을 맡아 일하면서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으로 활동했으나, 2007년 8월 박근혜 후보가 당내경선에 패배하였고, 이어 2008년 3월 한나라당의 제18대 국회의원 후보공천과정에 이른바 '영남대학살'의 과정에 희생되어 공천에 탈락하자, 당의 결정에 승복하고 정계를 떠났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학의 객원교수로 연구활동을 했고, 상하이에 있는 푸단대학 한국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서 한국과 중국 및 동북아 정세 관련 연구활동에 참여했다. 한편 2008년 11월부터 불교방송에서 《김재원의 아침저널》이라는 시사 프로그램 앵커로서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또 정치평론가로서 KBS1라디오의 열린토론 패널과 mbn, YTN, mbc, KBS TV 등에 출연하여 정치전문 평론으로 역량을 발휘했다. 2011년 7월에는 한나라당 당직개편으로 당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정치와 당에 복귀했다.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72.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당선후 19대 국회에서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간사를 역임하였다. 2013년 5월에는, 새누리당의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아 당의 주요 전략과 중장기적 기획업무를 총괄했다. 2013년 3월 6일 담배값 인상 법안 발의. (국민건강증진을 이유로 2000원 대폭 인상) 2013년 9월에는 같은 해 10월 30일에 실시될 보궐선거의 당 공천심사위원으로서 일했다.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국가정보원 개혁 특별위원회' 새누리당 간사로 활동하면서 국정원 개혁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2014년 1월부터는 새누리당 지방선거기획위원회 부위원장, 2월부터는 새누리당 중앙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4년 5월,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로 선출되어 2015년 1월까지 이완구 원내대표와 환상의 콤비로 평가받으며 세월호특별법 협상과 2015년 예산안 처리를 주도했다. 2015년 2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정무특별보좌관에 임명되어 청와대와 여당 및 야당과의 정무적 조정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저서

막북(漠北)에서 다시 쓴 열하일기

정치인 김재원, [열하일기]와 운명적으로 조우하다 2008년 7월 김재원 의원에게는 큰 시련이 닥쳐온다. 마흔넷의 나이에 자신을 가다듬기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홀연히 떠난 그는 운명처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만났다. 조선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행기이자 최고의 문장으로 손꼽히는 [열하일기]에 홀연히 빠져든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게 된다. 230년 전 중국을 방문한 조선 지식인의 눈에 비친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박지원이 걸었던 연행길은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까? [열하일기]에서 고발한 조선의 문제점은 현 사회에도 유효한가? 열하일기에 담긴 박지원의 문제의식은 230년 후의 김재원에게도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았다. 전략기획통으로 불리는 김재원답게 답사도 남다르게 계획했다. 1780년 6월 23일 압록강을 건넌 연암처럼 음력 6월 하순에 압록강을 출발했고, 8월 9일 박지원이 열하에 도착한 일정에 맞추어 그도 음력 8월 10일경에 하북성 승덕시(열하)에 도착했다. [열하일기] 속 등장한 장소와 현재의 지명과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려고 중국의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지도와 내비게이션을 활용하기도 했다 박지원과 김재원, 조선의 지식인과 대한민국의 정치인, 2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연행길에서 만나다! 漠北 : 고비 사막의 북방의 지방. 현재의 외몽고 7년의 기록, 1만 장의 사진으로 담아낸 열하일기 답사기!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현직 정치인이 파악한 조선왕조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의 동북아 판도를 형성한 청나라 건륭제 시대, 이를 바로 보지 못하고 춘추대의만 주장하던 조선왕조의 후진성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중국 전역을 누비는 수레를 설명하며 조선에는 수레가 다닐 도로 하나 제대로 건설하지 못하는 벼슬아치들의 무능을 비판하는 박지원의 글발에서, 오늘날 무능한 정치의 데자뷔를 보기도 한다. 김재원은 한 번의 답사로 만족하지 않고 필요한 사진이 생길 때마다 다시 중국 현장으로 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답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2014년 가을까지 3차례에 걸쳐 열하일기를 답사하면서 촬영한 1만 여장의 사진 중 최고만 뽑아 블로그에 연재한 후 다듬어 [막북에서 다시 쓴 열하일기]로 펴내게 되었다. 글 속에는 신문물을 구경하고 기록하려 안달했던 박지원처럼, 저자가 새로운 물건과 정취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실감 나게 그려진다. 공사 중인 유적지를 통사정하며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중국인의 상술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과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어울리는 모습에서는 정감이 묻어나고, 자금성 속에 서린 조선 여인의 한을 회고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찌르르 울리기도 한다. 소설 [객주]를 통해 '길 위의 작가'라는 명성을 얻은 소설가 김주영은 추천사에서 '이 책은 [열하일기]가 놓치거나 생략한 부분까지도 꼼꼼하게 찾아내어 복원하거나 새롭게 서술하고 있다. 정치인의 뻔한 자기과시용 저술이 아니라 순수한 작가적 열정과 학술적 탐구욕이 엿보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독자들은 책 속에서 연암이 갔던 길을 따라가며,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의 고뇌를 함께하고, 역사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연암을 읽고 오늘을 생각하다 추천사 '길 위의 작가' 김주영 추천사 푸단대학 한국연구소 소장 쩡찌융 박사 [열하일기]에 대하여 조선 사행단의 구성 당시 국내외 정치상황 도강록 一 연암 박지원, 압록강을 건너다 二 호랑이를 쫓으며 이틀간 노숙하다 三 책문에서의 청나라 입국심사 四 봉황성을 지나 송점에서 머물다 五 통원보에서 홍수로 엿새 동안 발이 묶이다 六 연산관에서 고향집에 날아가는 꿈을 꾸다 七 청석령을 넘어 낭자산에 이르다 八 드디어 일천 이백리 요동벌판에 서다 九 요동성에 입성하다 十 태자하를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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