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9 - Exit Glacier Trail

명산은 때로는 그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꿈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그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가 마침내 그 품에 안긴다면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그리도 그립던 정인을 대하듯 울음보를 터트려버리지는 않을지.. 그래서 그 길은 발이 아닌 마음으로 걷게 될 것입니다. 알래스카 트레킹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길의 끝에 있는 Exit 빙하 지대의 Harding Icefield(빙원). 신성한 신들의 거처인 듯한 이곳을 오늘 드디어 오르려합니다. 전날 폭우 속에서 잠시 속살을 건드리려다 만 Lost Lake 트레일과는 바로 이웃을 하고 있는데 Seward highway 4마일 지점에서 꺾어 9마일 정도를 들어서면 인간의 길은 끝이 나고 신선의 갈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빙하와 빙원에서 녹아내린 물들이 흘러 이룬 강물을 거슬러 달려가는데 거칠고 광막한 풍경이 또 다른 지구의 이방에 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미 수워드를 출발 할 때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빙하산으로 다가갈수록 비는 더욱 세차게 뿌립니다. 일어나는 인간적인 갈등. 차라리 돌아 가버릴까? 그러나 신기하게도 주변은 비구름으로 어두운데 저기 저만큼에서 빙산의 정상에만 빛기둥이 내리고 있습니다. 마치 메시아의 출현처럼 마음을 이끄는데 가야하는 올라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계시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절대자의 묵시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 엑시트 글레이셔 트레일.

7킬로미터의 길을 1200미터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니 그 경사도의 급함이 계산이 되는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주차하고 주섬주섬 여장을 챙기는데 거짓말처럼 비는 개고 하늘이 어느 정도 열립니다. 워낙 오락가락하는 해안 산악지대의 날씨지만 지금 이순간 비가 그쳐주니 다만 고마울 뿐입니다. 왜 하필이면 비상구 혹은 출구의 뜻인 Exit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아마 현실을 벗어나 신선의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닐까? 아니면 만년의 시간을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러 가는 출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의 답은 산을 오를수록 또 하딩 빙원으로 다가가면서 자연스레 얻어집니다. 이제 자연의 빗장을 열고 더욱 비밀스런 신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트레일은 150미터 고도에서 시작해서 Marmot Meadow가 펼쳐지는 2km 지점의 300미터를 오르게 되고 이내 절벽구간이 1km 정도 이어지는데 아득한 발아래 펼쳐지는 빙하의 장대한 흐름을 조망하며 오르게 됩니다. 그후 리지를 따라 하염없이 오르면 막다른 인간의 길이 나타나고 신선의 길이 시작된답니다.

주차장도 초반 산행길도 많은 인파로 붐빕니다. 트레킹 제일의 명소이자 빙하의 바탕부분에서 올려다보는 비경이 압권이라 일반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도하니 관광버스도 모두 다녀가는 곳입니다. 길을 꺾어 본격 등산로로 들어서면 그 수런함은 사라지고 한적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젊은 백인 한쌍과 수인사를 나누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오릅니다. 조금 말을 섞어보니 유럽에서 온 친구들인데 이렇게 떠나온 곳은 각자 달라도 가슴에 품고 온 것은 오직 하나. 명산을 오르기 위해서입니다. 초반 길은 숲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열대 온대 한대 등 여러 기후대가 모여 오랜 세월 키워낸 원시림으로 숲은 활기찬 생명력으로 풍요로운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만년설과 빙하가 있는 산이지만 습하기도 하여 초목을 풍성하게 키워내는가 봅니다. 물기 먹은 돌길을 밟으며 갓길에서 안전 가드 역할을 해주는 바위들을 스치며 이리저리 에둘러 가는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나무들이 시야를 가립니다. 이렇게 우거진 숲길을 지날 때는 산들이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길섶의 소소한 것들에 마음을 줄 일입니다. 혹독한 환경의 이 광막한 땅에도 계절이 바뀌니 어울리지는 않게 야생화들이 제법 소담스레 피어 있는데 어쩌면 이 들꽃들은 계절과 기후를 망각하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나무를 따라 꽃을 따라 향기를 따라 쫒아가다 보니 어느새 나무들의 키가 땅으로 내려앉고 넓은 목초지가 나옵니다. 이제는 숨겨 놓은 빙하의 자락들이 보이고 뒤돌아보면 레저렉션 강이 해협으로 흘러가는 계곡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멀리 시워드의 해안 마을이 아스라이 보이고 무성한 숲의 들판엔 삶의 무게를 싣고 달려가는 차량들과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철마도 조그마하게 보입니다. 인간의 삶과 자연이 원래부터 일부였던 것처럼 그렇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검은 구름이 머리 위에 와 머물고 어서 가라고 다구칩니다. 제발 산행동안만은 비가 오지 않아 주기를 타협처럼 기원합니다. 넓은 목초지가 나오고 온갖 야생화들이 바닥을 기어가는 위로 안개가 자욱합니다. 또 그 위에는 계곡을 타고 폭포가 흘러내립니다. 만년설이 뿌리는 폭포는 신이 내리는 축복. 그 물줄기가 영혼을 씻어주고 새 생명을 품는 듯 마음이 가볍고 새로워지니 이어지는 절벽길도 고개로 다가가는 가파른 길도 힘차게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한걸음 한걸음 떼기가 참 힘에 버겁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북돋을 아름다운 동행이 있으니 서로를 토닥이며 산을 바라며 길을 오릅니다. 산은 좋은 친구이자 삶의 일부입니다. 마지막 정상을 조금 남겨두고 악천후를 대비한 셸터가 견고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비 안개와 개스가 가득차 어차피 풍경을 볼수 없으니 조금 기다리기도 하면서 대피소 내에 우리들만의 주방을 차립니다. 버너. 코펠을 이용하여 뜨겁고 화끈하게 매운 불 짬뽕면을 끓여냅니다. 버너의 화력으로 자그마한 내부까지 온기로 채우니 일석삼조의 효과입니다. 오늘처럼 찬비 내리는 날 이국의 하늘아래 낯선 산정에서 만년설을 곁에 두고 먹는 오찬. 도시락 밥 뜨거운 면에 말아서 김치랑 밑반찬이랑 먹는 맛을 어디 임금님 수랏상에 견줄 것인가!

반시각을 머무르다 정상을 밟았습니다. 훨씬 많이 시야가 확보되었습니다. 기다린 듯 반겨주는 저 비경. 온산을 내리누르고 있는 구름과 비. 영겁의 시간동안 산마루를 지켜온 빙하. 자신을 녹여 빙하호를 만들어 우리 인간들에게 절경을 선사합니다. 조금의 모험심을 발동하면 이내 저 영겁의 세월동안 다져진 빙원으로 다가가 걸어볼수 있으련만 날씨가 썩 내키지 않게 합니다. 이미 한차례 경험도 있고하니 다들 됐다고 손사래를 젓습니다. 산정을 적당하게 덮고 있을 것 같았던 빙원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 광대한 풍경에 속절없이 무장해체를 당한 채 발이 얼어 붙어버립니다. 공기마저 엄숙하게 가라앉은 이 순례자의 길 끝에서 우리는 저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고 말없이 술 한잔 담배 한개피로 등정의 의미를 삼키고 내 뿜습니다. 더 이상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성산. 순백으로 쌓인 시간만큼 고결한 산마루에 서니 오름의 고난도 한 줌 바람이 되고 비좁은 마음을 채웠던 욕심도 회한도 한 점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립니다. 저 구름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미주트래킹을 참조하세요

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9 - Exit Glacier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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