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새누리당 국회의원 - 한국

경력 및 이력

정병국(鄭柄國, 1958년 2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77년에 서라벌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성균관대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하자마자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하였고 이로 인해 경찰의 수배명단에 올랐다. 포항에서 도피하던 중 10·26 사태를 접하고, 곧바로 상경하여 전국 총학생회 부활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뜻대로 총학생회는 부활하고 있었지만 5·17 군사 정변 직후 신군부에게 검거되었다. 검거 후 신군부에서 내건 조건은 군 입대 또는 투옥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군 입대를 결심하고 해병대를 지원하였다. 전역 후 복학하여 1984년에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치게 된다. 정병국은 수배를 받으면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세인출판사'를 운영하며 서울 지역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인쇄물들을 공급하였고 군사 정권과 투쟁하고 있는 학생들을 꾸준히 지원하였다. 그러다가 1987년 6월에 다시 안기부에 의해 검거되어 고문을 받던 중 6·29 선언를 접하게 되었다.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6·29 선언으로 인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은 그의 변론을 자청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소속 변호사들이었다. 그 인연으로 그는 제13대 대선에 참여하게 되고, 대선에서 홍보담당 전문위원으로 활양하게 된다. 대선 뒤 김영삼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통일민주당 총재비서관을,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민주자유당 총재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2년에 김영삼이 제14대 대선에서 승리하자 정병국은 1993년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36세였으므로 임명된 비서관들 중 가장 젊은 나이였다. 36세에 비서관으로 임명된 것은 김영삼이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관 재직시절에 그는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IVP(International Visitors Program)에 참가할 수 있었다. IVP는 김영삼, 김대중, 이부영, 김근태도 참가했던 프로그램으로, 세계 각국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만 초청된다. 지금까지 IVP가 배출한 세계 각국의 국가원수들의 수는 150명에 달하고, 국회의원의 수는 5,000명을 상회한다. 정병국은 이 프로그램에서 더욱 치열해지는 국가 간 경쟁에서 필요한 차세대 지도자가 갖충야 할 덕목들과 국제 감각을 익히게 되었다. 1998년에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0년에 제16대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17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 해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2011년 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하였다. 학력 1971년 개군국민학교 졸업 1974년 경기중학교 졸업 1977년 서라벌고등학교 졸업 1984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 학사 1998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2004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경력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상임의장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한나라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제2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새누리당 지역공약실천특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