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실적 부진에 대규모 해고 등 전례 없는 구조조정

지난달 28일과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일대에는 이른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이틀에 걸쳐 내린 비는 다소 요란했지만, 4월을 목전에 둔 봄비였다.

미 서부 지역은 최근 수년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에 시달렸다. 예년 같으면 비 한 방울 한 방울이 단비처럼 느껴졌겠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캘리포니아주 지역에 하루가 멀다고 비가 내린 까닭이다.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내리기도 하면서 홍수가 나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겨울에는 날씨 좋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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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비가 내리기를 고대하던 주민들조차 "이제 제발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털어놓기까지 한 겨울이었다.

비가 많이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기온도 떨어졌다. 예년과 비교하면 큰 폭의 추위가 지속됐다.

때로는 폭풍을 동반한 '겨울 폭풍'이 여러 차례 몰아치면서 이 지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실리콘밸리에도 수만 가구의 집에 전기가 나가기도 했다.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티뷰에 40년째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40년 동안 이번 겨울처럼 날씨가 좋지 않았던 적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겨울 폭풍'은 공교롭게도 실리콘밸리에도 휘몰아쳤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메타 등으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들은 올해 최악의 시련을 겪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컸던 코로나19 때에도 보란듯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이제는 성장 둔화를 겪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10∼12월 매출이 분기 기준으로는 2019년 1분기 이후 처음 줄어들었고, 메타는 작년 2분기부터 세 분기 연속 역성장을 하고 있다.

MS와 아마존, 구글도 전년 대비 순이익이 줄어들거나 시장 예상을 밑도는 저조한 실적을 내놓았다.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올해 실적 전망도 불투명해지면서 이들 기업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메타와 아마존이 2차 해고를 발표한 것을 비롯해 MS와 구글도 인력 감축 작업에 들어갔다.

아마존 2만7천명, 메타 2만1천명, 구글 1만2천명, MS 1만명 등 이들 4개 빅테크 기업의 해고 수만 7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세일즈포스, 델 테크놀러지, 트위터, 줌, 리프트 등 다른 테크 기업들까지 합치면 해고된 직원은 1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이는 전례 없는 수준이다.

아마존이 제2 본사의 2단계 사업을 무기한 연기하고, MS는 가상현실 작업 공간 프로젝트 서비스를 중단하는 등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퇴출되고 있다.

스타트업의 버팀목이 돼 온 실리콘밸리은행(SVB)도 무너졌다. SVB는 지난 40년간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미국 내 16위 규모의 은행이다.

그러나 최근 급속하게 오른 기준금리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이 발생했고, 결국 문을 닫았다.

다행히 미국 정부가 신속히 전액 예금 보호를 해주기로 나서면서 예금자들을 모두 구제해 줬지만, 하마터면 스타트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뻔했다.

SVB 붕괴 여파로 또 다른 중소은행인 시그니처은행이 문을 닫았고, 세계적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도 위기설에 휩싸이며 스위스 최대 IB인 UBS에 팔렸다.

전 세계적인 기술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가 자칫 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뻔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비견되는 전례 없는 위기였다.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전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다시피 해온 실리콘밸리는 이제 언제 어디서 또 터질지 모르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몸을 숙이고 있다.

한 테크 기업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는 "20여년간 실리콘밸리에서 일해왔지만, 요즘과 같이 위기감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봄이 왔지만, 실리콘밸리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바탕 휘몰아쳤던 실리콘밸리의 '겨울 폭풍'은 잠시 잠잠해졌지만, '겨울'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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