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삶.

마침 미군으로 근무하던 동생네가 휴가차 한국에서 들어와 아이들을 몰아 근교로 캠핑을 다녀왔다 신록이 우거진 풍광도 좋고 오래간만에 떨어져있던 조카들도 보니 할 얘기도 많아 모처럼 살가운 3박4일을 보냈다 그런데 씁쓸하기로는 그 다음이 나빴다

분명 산속에 캠핑을 와서 더 산 물건은 없었을 터, 오히려 가져온 짐을 사용했으니 떠날 때는 당연히 줄어야할 짐이 차에 싣고보니 출발할 때와는 달리 의자 하나를 더 차지하고 있어 차라리 아이 하나를 숲속에 떼어놓고 와야할 지경이었다 차마 그럴수는 없는고로 다시 짐을 풀고 피난민 처럼 줄지어 짐을 정리하는데 참으로 가관이었다

십대의 계집애들이 셋씩이나 되니 헤어드라이가 나뒹굴고 아침에 쓰다남은 날계란이 노란 플라스틱 통에서 깨져 침낭을 적시고 기름묻은 후라이팬과 물주전자가 백패속에서 섞여있으며 그 와중에도 웃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텐트를 다시 접으며 악다구니를 쓰는 올캐의 모습하며 그 다음은 차마 옮기기에도 무색할 정도의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가 그 길고 어색한 침묵속의 귀가길이 되어 올여름 딱 그 만한 크기의 재앙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한국전쟁때 버들고리짝을 등에지고 솜이불을 머리에 인채 피난길을 떠났다는 우리 일가를 생각해보며고작 10만년전까지 동굴에 살던 우리가 정말 오늘날과 같은 그만한 짐들이 과연 필요했던지에 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동네 구석을 빠져나오다 보면 쉬 마주치는 거라지세일과 코스코에서 샴푸와 치솔 치약을 사도 몇 년치분의 공급을 강요하는 무지막지한 판매전략을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때마추어 입고 신고 걸치고 꾸미고 바르는 것들에 대한 깊은 의구심이 일었다

놀랍게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삶의 가장 최소한만을 갖고 살아가는 미니멀리스트였다는 사실은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청바지와 같은 색의 자라목 티로 나와 제품 설명회를 하던 모습은 아직도 우리들 기억에 있다 그러니까 절간의 장지문 사이로 스며든 투명한 햇살만 가득한 산방의 노란 방바닦과 그와 어울린 최소한을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여백을 상상해 본다

대나무 숲을 빠져나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조약을 닦으며 내려가는 시냇물 소리 그 넘치는 단순함으로 삶의 우선 순위가 자연스럽게 간추려지고 그것의 경중이 키질되는 시각화된 공간으로서의 허허로움 같은 것 말이다 법정스님의 최소치만 갖추어진 키작은 의자도 거기에 있다면 썩 좋은 그림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다지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차곡차곡 앗아내고 비우고 빼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모르긴 모르되 충일한 마음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는 물건까지도 기어코 내손아귀에 움켜 넣은 후에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것을 곡진히 사용하는 그런 족한 마음의 상태에서 울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단사리(斷捨離)라고 해서 절실하지 않은 것들을 끊고 버리고 멀리하는 최소한의 삶에서 오는 충일감 느끼기가 젊은 층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풍요속에서 자라고 컸지만 정작 그들이 사회에 나갈 때는 변변한 직장조차 얻을 수 없었던 그들의 좌절, 마음의 족함을 얻기위해서는 살벌한 먹이 사슬의 피라미드위에서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벌어와야하는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구조 속에서 단촐한 삶과 명상을 통해 기대치를 한없이 끌어내림으로써 족함을 높이는 것이었으리라 일사천리한 삶을 꿈꾸지 않는 그런 삶의 역학을 고스란히 받아내가는 행위로서의 삶, 참으로 넘치는 단순이 아닐 수 없으며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서 자못 비장하기 까지 하다 사람의 뇌는 컴퓨터의 용량과 닮아서 비워진 만큼 채워지고 채워진 만큼 느려지는 것이 이치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려면 그렇지 않은 일을 줄여야 한다. 그러면에서 아르헨티나의 축구 천재 메시도 일종의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한 경기당 평균 주행거리가 다른 일반 선수들이 평균 10㎞를 뛰는 반면 그는 8㎞를 달린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 핵심이 보이기 때문에 재담같은 이야기지만 human being 이지 human doing이 아니듯 멈추고 바라다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정말 우리는 탯줄을 자르고 갓 캐어난 붉은 고구마처럼 홑몸이 되어 태어나 어째튼 우리는 흙으로 간다 그리고 그 떠남은 지극히 개별적이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그 길떠나는 입성인 수의에는 이미 지니고 떠날 주머니가 없음도 기억할만하다

다만 우리가 살아있는한 잠들어 일어나면 반드시 주어지는 균등하고도 새로운 우리 앞의 하루를 따사로운 눈과 충만함을 갖고 대할 수 있는것도 아무래도 세월의 덕택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글쓴이를 만나보시려면

의견 등록


사이트 기준에 맞지 않는 욕설 및 수준이하의 비판, 모욕적인 내용은 삭제됩니다.

Et    

관련 커뮤니티

제목 등록 조회 일자
일제강점기 한국 문화·산림보존 헌신 - 아사카와 다쿠미 양국 추모 글로벌한인 1138 04/02/24
제철밥상 밥은보약 달래전&달래장 글로벌한인 1213 02/23/24
한국 의대선망' 조명 ..급여·안정성에 끌려 반도체마저 외면 글로벌한인 1058 02/19/24
재외동포 비즈니스 자문단(OK Biz) 모집 글로벌한인 920 02/16/24
제철밥상 밥은보약|EP.1 봄동겉절이 글로벌한인 723 02/09/24
토트넘 감독 "손흥민은 국가 영웅…끝까지 가길" 글로벌한인 1016 02/06/24
아마존 등 소매·물류 업체들 드론 배송 활성화 글로벌한인 1204 01/04/24
뇌졸중 전문가들이 꼽은 '꼭 지켜야할 예방수칙 3가지 글로벌한인 1244 12/03/23
코리안 언더독' 이야기 - BBC News 코리아 글로벌한인 7992 10/10/23
제78차 유엔총회 윤석열 대통령 기조연설 글로벌한인 6609 09/23/23
'해트트릭' 손흥민, BBC 베스트11 선정 글로벌한인 6657 09/05/23
양도 소득세를 면제 받으려면 글로벌한인 6868 07/16/23
윤석열 대통령, 재외동포청 출범식 기념사 글로벌한인 6782 06/11/23
윤석열 대통령, 제68회 현충일 추념사 (2023년 6월 6일) 글로벌한인 6662 06/09/23
더 글로리 실화판 - 전 12년간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 글로벌한인 6642 04/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