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스틸 매각 반대가 보여준 美 프렌드쇼어링의 모순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인데 미국이 못 하게 할까요?"

작년 말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가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를 받게 되자 워싱턴DC의 한국 정부 당국자와 재계 인사들이 보인 반응은 대체로 "설마"였다.

그 어떤 아시아 국가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견제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온 일본인데 과연 인수를 막겠느냐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14일에 나온 바이든 대통령의 성명은 일본이 아무리 긴밀한 동맹일지라도 '정치적 고려'보다는 뒷전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US스틸은 한 세기가 넘도록 상징적인 미국 철강회사였으며 국내에서 소유하고 운영하는 미국 철강회사로 남는 게 필수적"이라고 밝혀 US스틸 매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이미 일본제철의 인수에 대한 CFIUS의 "면밀한 조사"를 예고한 뒤였다.

CFIUS는 외국인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 등 대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해 안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이 그 문제를 해소한다는 조건으로 승인하거나 거래 자체를 불허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 동맹이자 주요 7개국(G7) 일원인 일본의 US스틸 인수가 실질적인 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바이든 대통령이 쉽지 않은 재선 도전을 앞두고 노동조합 표심을 얻고자 반대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US스틸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는 오는 11월 대선 승패를 좌우할 주요 경합주 중 하나다.

일본제철은 인수 후에도 US스틸에 계속 투자해 미국 내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 쇠락한 '러스트 벨트' 지역의 유권자들과 정치권에는 인수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US스틸 매각에 반대해온 미국철강노조(USW)는 바이든 대통령의 반대 성명 발표 며칠 뒤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일본제철의 도쿄 본사
일본제철의 도쿄 본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간 '프렌드쇼어링'을 주장해온 바이든 행정부가 일본제철에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 할 수 있다.

프렌드쇼어링은 주요 산업 공급망을 동맹 등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옮기자는 구상으로 쉽게 말하자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중국에 공장을 짓지 말고 생산 거점을 미국이나 미국에 우호적인 나라에 두자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혼자서는 미국에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산업 공급망을 모두 구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한국과 일본 등 동맹에게 미국에 공장을 짓고 투자하라고 적극 권장해왔다.

동시에 수출규제 등 다양한 정책 도구를 활용해 동맹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 미국에 투자할 수밖에 없게 만든 측면도 있다.

그렇게 선언해 놓고서는 막상 일본이 미국 철강산업에 투자하려고 하자 다른 사람도 아닌 바이든 대통령 본인이 직접 막고 나선 것이다.

이런 그를 두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사설에서 제조업 부흥과 노조 만족, 프렌드쇼어링과 중국 견제, 동맹과의 관계 유지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여러 목표가 상충해 "잘 혼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이 코 앞인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라고 이해해보려고 할 수도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도 결국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동맹도 무시하는 대중영합적인 정책을 폈다는 게 현실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막을 경우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국가 안보라는 개념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9월 CFIUS가 외국인투자의 국가 안보 영향을 평가할 때 핵심 공급망, 첨단기술, 투자 동향, 사이버보안, 미국인의 개인 정보 보호 등 5가지 요인을 추가로 고려하라고 명령해 투자를 막을 수 있는 사유를 늘린 바 있다.

이런 동향은 최근 몇 년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가는 상황에서 우려스러운 바가 적지 않다.

미국 재무부의 연례 CFIUS 의회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에 대한 CFIUS 심사는 2020년 2건에 불과했으나 2021년 13건, 2022년 14건으로 증가세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이 US스틸처럼 선거철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미국 기업을 건드리지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지 일본제철에서 일어난 일을 삼성전자나 현대차, 포스코가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미국이 동맹이고 다수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지만 누가 대통령이든 기본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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