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과 이주...독일과 한국의 인구 변화

인구 변화로 독일과 한국은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낮은 출산율을 비롯해 독일의 경우는 매년 수십만 건에 달하는 낙태로 인해 신생아 수가 계속 줄고 있으며, 이러한 인구 감소의 영향이 노동 시장에 미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사회 보장 비용을 부담하는 경제활동 인구의 수가 점점 줄고 있으며, 반대로 노년층의 수명은 더욱 늘다 보니 사회 보장 혜택을 받는 해당 연령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독일은 이주민 유입으로 전체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인구 추이를 놓고 보면 위와 같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현실을 살펴보면 문제가 드러난다.

독일로 유입되는 이주민들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보장 혜택의 대상자들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이주민들에게 지급되는 사회 보장 기금은 경제활동 인구가 지급해야 하므로 해당 분야의 전체 대차대조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노동력 유입과 관련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50%에 달하는 업체들이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외국인 노동자가 15%에 달하는 건설 분야나 영농 분야의 외국인 계절인력 등은 실질적으로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 세대 간에 부양하는 연금 체계

노동시장과 사회 보장 제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치는 어떤 혁신을 꾀해야 할까? 원칙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출산율과 이주를 통한 노동시장 활성화, 그리고 정년퇴임과 관련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주제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정책적으로 개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성과로 연결되는 성공 비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아마 연금 개혁일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연금 수령 연령 조정이 수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감액 없는 정규 연금 수령 연령이 2031년까지 67세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된다.

1947년생부터 시작해 연금 수령 연령이 2023년까지 출생 연도 기준으로 매년 1개월씩 늘어난다. 예를 들어 1956년생의 경우는 기존의 연금 수령 연령인 65세에 10개월을 더한 65세 10개월에 정년을 맞이하고 연금을 받게 되며, 1964년생부터는 연금 수령 연령이 67세로 높아진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변화 과정에 커다란 반발이 없었는데, 독일제국 시절 오토 폰 비스마르크 수상이 1889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연금보험 제도를 실시하면서 노후 연금을 도입한 이후 예상 수명이 현저하게 증가했고, 연금 지급 기간을 지속적으로 연장해왔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가 연금 보험을 도입했을 당시 첫 번째 연금 수령 세대를 위한 적립금이 충분치 않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 때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많았으며, 연금 생활자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동시에 그들의 수명도 오늘날만큼 길지 않았다.

독일의 연금 체계도 세대 간 부양 체제다. 경제 활동을 하는 근로자들이 연금 기금에 돈을 적립하고 그 돈으로 자신들의 연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선배 세대를 위한 연금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즉 젊은 세대는 또다시 그다음 세대로부터 연금을 받게 된다.

이러한 방식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의 인구가 충분히 확보됨으로써 소득이 보장되고 사회적 비용의 인상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인구 구성 분포를 보면 젊은 세대의 수가 현격히 줄고 있으며, 점점 더 적은 수의 젊은 세대가 더욱 많은 수의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는 구조다. 이는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금 형태의 연금 요소를 더 많이 도입하는 것이 필요한 듯하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적립금에 대한 통화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은 1923년과 1946년 두 차례에 걸쳐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적이 있으며, 한국도 통화 가치의 혼란을 수차례 겪은 경험이 있다.

이런 배경에서 오직 자금을 축적하는 방식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유지된 저금리 국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듯이 채권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한 사례가 그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위험한 경우는 연금 기금이 주식에 투자했는데 주식 시장이 폭락하는 때다.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떠안는 세금 부담을 천정부지로 늘리지 않으려면 연금을 부분적으로나마 자본 운용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독일에서는 2002년에 당시 연방 사회부 장관의 이름을 딴 리스터 연금이라는 제도가 생겨났는데, 이는 개인적으로 적립한 연금에 국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운영이 매우 관료적이어서 유연성이 떨어졌으며, 필요한 행정 비용이 어떤 경우에는 적립금의 액수를 초과하는 사례도 많았다.

◇ 대규모 인구 유입의 필요성

정치 측면에서 두 번째 방법은 이주와 관련된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소위 노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인구 유입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 자체가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독일에서는 2015년부터, 그리고 2022년부터는 정책 변화에 힘입어 더 강력한 이주민 유입이 진행돼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독일로 이주했다. 처음에 독일로 들어온 사람의 다수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프리카의 이슬람교 국가들, 그리고 사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온 남성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독일의 노동시장으로 유입되지 않았다. 이들이 독일에 온 것은 합법적으로 일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독일의 관대한 사회 복지 체제의 수혜를 받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와 함께 이슬람 문화 기반이 형성됐으며, 이는 독일 사회의 일상에서 커다란 갈등 요소로 떠올랐고, 이로 인해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과 같은 극우 정당이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형태의 이주는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대부분 여성과 아이로 이뤄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이주민들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이주민들의 경우 사회 적응과 관련해선 문제가 훨씬 적었지만 이들의 유입 또한 노동시장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독일과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일정 정도의 교육 수준을 갖추고 사회 적응 능력이 있는 인력들을 조직적으로 초빙하는 것이다. 미국의 영주권 제도나 다른 국가들의 유사한 제도가 모범 사례로 흔히 언급되지만 사회 적응 능력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 적응 여부는 단지 동일한 문화권 출신만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럽연합 내에서는 어차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으며, 실제로 유럽연합 영내 주민들은 자유롭게 이주한다.

예를 들어 동유럽 사람들은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독일로 이주하는데, 이 경우 전혀 사회 적응의 문제가 없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간호사와 광부로 일하기 위해 독일로 와서 정착한 한국인들도 독일 사회에 잘 적응했으며, 전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주로 이슬람 이주민들의 경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구분이 필요하다. 서독의 경제부흥 초기에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이민 왔던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미 독일 사회에 매우 잘 적응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대규모로 유입된 이슬람 난민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면 한여름 수영장, 또는 공공 축제에서 여성들을 공격하는 사례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칼로 사람을 공격하는 형태인데, 이러한 범죄 행위를 하는 범인들 중 상당수가 이슬람 출신 이주민이다.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늘 이주민에 대해 열린 태도를 견지했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독일은 개방적인 망명 관련법을 시행했는데, 이는 나치 시절 제3국으로 피신했던 많은 독일 지식인을 다시 받아들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원래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던 적은 수의 사람들을 염두에 뒀던 것이지, 전쟁 발생 지역으로부터 많은 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대규모 이주민을 둘러싸고 불건전한 행태가 생겨났는데, 난민들을 대상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변호사나 브로커들과 유착해 소위 이주민들을 구조한다는 명목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비그룹, 또는 이주 문제에 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살펴보려는 모든 시도를 극우주의로 둔갑시키는 단순한 언론인이나 정치인들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 근로 이주를 활성화하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지 면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독일 사례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으며, 망명이나 난민과 같은 인도주의적 이주와 근로 이주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관해선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헝가리는 자녀가 많은 경우 일부 상환 면제 혜택이 있는 국가 대출 제도를 실시해 성과를 봤다. 한국은 이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는 해당 주제가 나치즘(국가사회주의)과 관련이 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들 중 하나다. 나치 시절엔 다자녀의 경우 자녀들의 숫자에 따라 '어머니 훈장'을 수여했는데, 4자녀는 동장(銅章)을, 6자녀는 은장(銀章)을, 8자녀는 금장(金章)을 수여했다.

현재 한 해 동안 독일에서 행해지는 낙태수술 건수가 10만 건임을 감안하면 태어나는 아기의 숫자가 왜 감소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낙태 건수의 대부분은 '사회적인 이유'로 행해지며, 여성들이 임신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참고로 독일은 세계에서 사회 복지 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국가다.

자녀가 많은 것에 대한 생각도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식이 많으면 요즘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가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못사는 가정이 자식을 많이 낳는다는 인식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돈 문제가 결정적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정말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슈퍼맘이나 슈퍼대디가 돼야 하는 기대가 너무 크다 보니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집에 자녀 한 명씩만 있는 것은 국가나 자녀를 위해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외동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훨씬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 남한의 고령화와 남북통일

연금 제도와 노동시장, 그리고 자녀 수와 관련해 정치가 개입해야 할 대목이 어디인지에 관한 폭넓은 논의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 복지 체제를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국가를 존속하려면 위의 세 가지 요소에 관한 혁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지닌 한 가지 희망적인 요소는 통일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인구 구성이 훨씬 더 젊기 때문에 남쪽의 고령화 문제가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의 주제와는 완전히 다른 주제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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