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버티고 물가는 다시 뛴다…2027년 통화정책의 함정

세계경제가 약한 성장과 높은 물가가 함께 나타나는 전형적 침체형 인플레이션 대신, 견조한 성장 속에서 물가 압력이 다시 넓어지는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500명이 넘는 경제전문가의 최신 전망에서는 조사 대상 50개국 가운데 31개국의 2027년 물가상승률 예상치가 높아졌다. 선진국도 21개국 중 15개국에서 전망이 상향돼 에너지 충격이 일부 지역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출발점은 중동 전쟁 이후 60% 넘게 오른 원유가격이다. 유가는 10월 7일 이후 배럴당 100달러 위에 머물렀고 최근 117달러를 넘기도 했다. 연료비 상승은 운송·전력·식품 생산비로 옮겨가면서 근원물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영국과 유로존의 2027년 물가 전망은 최근 세 차례 조사에서 각각 0.7%포인트와 0.5%포인트 높아졌다.

그런데 수요가 급격히 무너지지 않는 이유도 분명하다. 지난해 이후 세계적으로 1조달러가 넘는 인공지능 투자가 집행되며 반도체, 서버, 전력설비와 건설 수요를 떠받쳤다. 이에 따라 세계 성장률 전망은 올해 3.0%, 내년 3.2%로 직전 조사보다 각각 0.1%포인트 상향됐다. 기업투자 중심의 성장과 가계 생활비 압박이 동시에 나타나는 비대칭 구조다.

중앙은행에는 성장률 숫자가 좋아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부담이다. 경기가 버티는 동안 기업이 에너지·운송비 상승을 판매가격에 전가할 여지가 커지고 임금 협상도 강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 다수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을 제한적으로 시행했지만, 근원물가 확산이 확인되면 추가 긴축 압력이 높아진다. 이미 장기 국채금리 상승이 주택과 기업 차입비용을 올리고 있어 기준금리를 더 높일 때 금융시장의 충격도 커진다.

정책 판단은 전체 성장률보다 성장의 구성과 가격 전가 속도를 함께 봐야 한다. AI 설비투자의 혜택이 일부 기업과 지역에 집중되는 동안 가계 실질소득이 약해지면 거시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이 벌어진다. 재정정책은 에너지 가격을 일괄 보조하기보다 취약계층을 선별 지원하고, 통화당국은 일시적 유가 상승과 서비스물가의 지속성을 구분해야 한다. 2027년의 핵심 위험은 경기침체 하나가 아니라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서로 다른 계층에 분리돼 나타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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