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트레킹의 백미. 토레스 델 파이네 종주 1일차. #2
— 02/04/19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일. 페루 마추피츄와 함께 남미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인구에 회자되는 이 트레킹. 공원 내 루프형태로 된 전 구간 종주는 일 주일 이상 요구되며 더러는 야영을 할수 밖에 없어 캠핑 장비를 모두 두 어께에 짊어지고 하는 지라 적지 않은 고난을 감래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트레커들은 3박이나 4박으로 진행되는 W 트레킹을 선호하는데 이 코스를 걸으며 파이네의 최고 경관을 여기에서 거의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반구의 겨울 한철만 트레킹이 허락되는 계절의 반대 남반구 천형의 땅은 그래서 이 W트랙을 위한 한정된 수의 산장이나 캠핑 사이트의 예약이 일년전에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지구의 끝.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이 가득 채워진 곳. 눈으로 덮인 준봉들은 수천만년전 지각변동으로 형성된 피오르드 형의 산으로 화강암의 돌출과 융기로 웅장하고도 수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만 속삭이는 파타고니아에 정주한 신의 목소리. 시원스레 흘러가는 계곡물을 역류하여 홀가분하게 오르기 시작하니 싱그러운 자연의 향취가 우리의 전도를 축복하여 줍니다. 꽃내음과 나무 향이 후각을 신선하게 자극하는데 4시간을 쉬임없이 올라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으니 가능한 한 말수를 줄이고 간격을 유지한 채 부지런히 발바꾸기를 합니다.
이제 마지막 너덜지대의 돌밭길이 나타납니다. 여전히 신비에 쌓인 파이네 삼봉은 머리부분만 보여줄 뿐이어서 기어코 우리 두눈으로 확인하고만 싶어 무거워진 발들을 옮겨 딛는데 숨이 이내 턱까지 차오릅니다. 한담을 나누던 좀전의 그 미소가 비명으로 바뀌는 시간입니다. 지그재그로 경사를 죽인 안전 표시판이자 이정표인 막대 표시물이 지금은 구원과 기원의 상징인 십자가로 보여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찬연한 햇살. 그 붉은 빛에 물들은 파이네 첨봉의 장대함에 온 몸에 전율이 일고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조각칼로 거칠게 쳐낸듯한 화강암 돌기둥. 그것이 그대로 3천 높이의 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아래는 만년설이 녹은 물을 조용히 받아들여 옥색으로 간직한 호수가 풍치를 더 신비롭게 해주고 그 웅장한 위용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처럼 경이로운 대 자연은 자연스레 인간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습니다. 한없이 작아지는 대 자연 앞에서 겸허하게 살자고 나를 독려도 합니다. 호수에 떠있는 에매랄드 빛 유빙의 형상이 가만 V자를 만들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보지 않은 가장 느리게 가장 깊은 심호흡을 하며 대자연과의 동화를 시도해봅니다. 자연속에서 좋은 동행과 함께 그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트레킹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일 것입니다. 파타고니아 처럼 대자연은 눈이시리도록 아름답지만 어쩌면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을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를 내세우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가혹한 파타고니아의 바람도 잠들어 주지 않을까? 태초의 신비를 잉태한 채 자연과 인간과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역동의 땅. 파타고니아. 그래서 사람들은 파타고니아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땅이라고들 말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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