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가는 길. 잉카 트레일 첫째날. #2
— 04/01/19
세상 절반의 식물이 여기가 조상이며 400여종이 넘는 감자의 본산이라고 자랑스러워 하는 원주민 출신의 우리 팀 가이드는 거의 식물학자의 수준을 지닌 지식으로 나무와 풀 꽃 등을 빠짐없이 설명해주고 도중에 유적지에 대한 설명도 열심히 하지만 거의 이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천천히 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 대로 걸어가는 것. 트레킹에서 가장 힘을 들이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가는 도중에 볼 수 있는 잉카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부락들이 이어집니다. 삶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거의 음료와 주전부리입니다. 그늘을 제공해주는 댓가 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는 애처롭게 살아가는 그들 삶의 애환이 서글퍼 그리 필요하지도 않지만 한두가지 팔아줍니다. 무너진 돌담. 버티기도 힘들 것 같은 허물어져가는 흙집. 고산에 사는 원주민들의 거주지는 거의 비숫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가난이 무엇인지 조차도 비교할 수 없는 산골마을의 인디오들은 마냥 행복합니다. 우리도 때론 모르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할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정오를 넘기고 어느 마을에 차려진 식탁. 전혀 부족하지 않은 그리고 정갈한 오찬을 들고나니 오히려 부족한 잠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비가 한두방울씩...
우르밤바강을 끼고 걷는 도중에 가이드가 유적지가 나타날 때마다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잉카인들이 돌을 쌓아 만들어 놓은 주거지인데 땅을 지배했던 신물이라 여기는 뱀의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옛날 마추픽츄를 오고 갔을 잉카인들이 이용했던 곳이랍니다. 계곡 속의 작은 마을과 가지런히 정돈된 다락 논이 어우러져 참 평화스러우며 보기가 좋습니다. 고도 3천을 찍는 지점인 와일라밤바 어느 상점 뒷뜰에 마련된 숙영지에 여장을 풉니다. 잘 쳐진 2인용 텐트 하나씩을 차지하고 잠자리를 고룬 뒤 저마다의 휴식을 즐기는데 웃돈 주고 온욕 샤워를 하기도 하는 예기치 않은 호사도 누립니다.
아직 저녁 식사 까지는 두어시간이나 남아 맥주를 시켜 잉카 트레킹의 첫날 오늘의 노고를 달래며 잔을 돌립니다. 어둠이 거미처럼 기어들고 서녁하늘 노을로 불타는데 가이드의 처량한 잉카 음률의 피리소리가 이역 하늘 아래 머무는 길손의 가슴을 적십니다. 한잔 두잔 취기가 더해가면서 석양은 마지막 기운을 발하고 기울어 가는데 이 부족을 잇는 전령사 차스키가 달리던 잉카의 길 위에 있다는 자부심에 조금은 상기된 채 행복을 누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