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지구의 반대편 남미 일주 트레킹. #2

간밤 쉬임없이 몰아치던 폭우. 이 상태의 일기로 산에서의 숙영은 커녕 트레킹 조차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새벽 5 시 까지 창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지난 저녁시간 텐트도 없는 야영이 무리라는 의견이 소수가 되어버린 야영 찬성 결정이 무색하게도 이 시간 까지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신은 그리고 산은 나를 또 거부하는가! 초조함에 다시 선잠을 자는데 6 시에 울린 자명종 소리. 굳이 야영을 못할 바에는 이렇게 빨리 서둘 필요가 없잖은가 하는 체념같은 자조로 알람을 해지하면서 귀를 기울이니 어쩐 일인지 빗소리도 나지 않고 바람소리도 죽어 있습니다. 넓은 창으로 내다보니 비가 그쳐보였습니다.

바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나가 확인한 바 비록 아직은 촉촉하지만 청명한 기류에 무수하게 많은 총총한 별들이 하늘을 가득메우고 있습니다. 프론트 데스크에 앉자 잠에 취해 혼미한 눈동자를 한 직원에게 오늘 내일의 날씨와 산행 컨디션을 확인해 달라하니 변경된 일기 예보는 한마디로 Perfect(완벽)하다고 합니다. 한없이 기쁜 마음에 동행들을 깨우고 준비하라 이릅니다.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기력없던 종주의 열정이 우리들의 행동들을 바빠지게 하면서 파타고니아의 산촌 엘 찰텐의 아침은 그렇게 힘차게 열리고 있었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완벽함을 추구하며 배낭을 꾸리고 제법 어께끈에 내리는 하중이 묵직한 느낌으로 여명을 헤치며 장도의 길에 오릅니다. 칼라파테 호텔 소유 동포가 알려준 요즘의 분위기. 공원측에서 그룹 단위의 산행을 통제하며 현지 가이드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그들이 출근하기 전에 길을 나서라는 권고를 받아드려 이 어둠을 걷고 가는 것입니다. 초입에서 화이팅 한번 크게 외쳐보지 못하고 서둘러 언덕을 오르다가 공원 현판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대열을 고르는데 여기저기서 단말마 경탄의 말들이 쏟아집니다. 아침 해살을 받아 순백의 설산들이 빛을 내는데 어제밤 그렇게 무수이도 내린 비는 산정에는 눈이 되어 비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감동의 연속은 오전 내내 세로 또레 빙하를 품은 호수까지 이어집니다. 남김없이 버려버린 하늘. 그래서 티없는 푸른 하늘이 설봉들과 대비되면서 더욱 더 청초함으로 가득합니다. 세로 또레를 보좌하는 아이거와 세로스탄아르트의 삼봉엔 비밀스러움을 감춘 베일 같은 구름이 둘러있고 여름 빛이 가득한 계곡 위로 펼쳐놓은 동토의 장엄함. 참으로 마음이 설레고 눈이 부십니다.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피츠로이 트랙은 피노세트 야영잘까지 치고 올라가 배낭을 두고 피츠로이 산이 낳은 로스 토레스 빙하호를 보고 내려와 야영하고 다음날 세로 또레를 품은 빙하호를 만나고 하산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길을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첫날 무리가 가더라도 조석 변개하는 파타고니아의 날씨를 믿기 어려워 미리 할 만큼은 다 해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여차하면 하산하면 세시간이면 되고 또 일찍 하산하여 이어지는 칠레 파타고니아의 W트랙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실행에는 24km 이동에 10시간의 강행군이 따라야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라면 단연 피츠로이 산군을 꼽는데 때 묻지 않은 야생과 산세가 특이하게 상어 이빨처럼 날카로운 첨봉들을 가지고 있어 지금은 사실상 파타고니아 등산의 메카로 자리하며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와 쌍벽을 이루는 곳입니다. 팜파스 평원이 품은 아름다운 산골마을 엘찬톤에서 시작과 마감을 하는 피츠로이 산군 파타고니아 트레킹은 쎄로또레(3102m)와 피츠로이 산(3405m)을 연결하여 하루를 야영하며 걷는 천상의 길입니다. 높이로만 본다면 하잘것 없어 세계 최고봉에 명함도 못내밀겠지만 이 두산정은 송곳처럼 솟아올라 거의 직벽에 가까운지라 등반이 매우 어려운 산으로 알려져 있어 미답의 산정을 오르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등산가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쎄로또레는 남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설봉 장관을 이루는 산 가운데 하나로서 피츠로이 서쪽에 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봉우리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세로 토레는 슬픈 등산의 역사를 품고 있는데 물론 논쟁의 여지없이 인정받는 첫 등정은 1974년 페라리외 3인이 주축이 된 이탈리아 등반대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내노라 하는 수많은 등반가들이 도전 하였지만 쎄로또레는 아직도 그 정상을 쉽게 허락 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전 1950년도 두명의 등반가들이 초등에 성공하였으나 이 일정의 등반일지와 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그가 추락사하며 급류에 휘말려 완등을 입증할 길이 없어 인증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시절 그토록 열악한 장비와 정보로 해낸 쾌거가 거룩하기만 한데 인증을 받지 못했으니 오죽 한스러울까? 그래서 그를 추종하는 후배들이 그 카메라를 찾으려고 그 이후로 중단없이 이 산을 오르고 있다합니다. 그리고 그 주변 고봉들은 또레를 오른 등반가들의 우리들로서는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힘든 이름들이 붙여졌다 합니다.

원시의 생동력이 넘치는 파타고니아. 이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명산, 세로 토레를 보기 위하여 비갠 산길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수도 없이 다녀 숫제 깊게 파여 물길이 되어버린 황톳길을 쳐올리며 시작점에 표시된 숫자를 기억합니다. 1 km마다 이런 거리 표시를 해두 었는데 10km를 오르면 그 까다롭게 구는 세로 토레의 위용을 호수에 비춰볼수 있답니다. 처음부터 가파른 언덕길을 치고 오르며 너절한 고개길을 넘으니 펼쳐지는 풍경 하나. 키작은 고목들이 그 장구한 세월 만큼이나 짙은 색의 옷을 입고 켜켜이 쌓인 이끼류의 풀들을 휘두르고 바람에 섰고 아직은 여름날의 들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고 멀리 암산 골마다 따라 흐르는 폭포는 한마리 거대 용이 승천하는 기세. 선경을 만납니다. 계곡마다 가볍게 안개가 드리우고 산정 주변에는 구름을 휘둘러 있으니 우리는 몽유도원도의 산수화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듯 합니다. 바로 나타난 전망대에 서서 한동안 잔잔한 신음소리를 내며 그외에 이을수 있는 표현이 부족하여 내 어휘력의 한계를 실감합니다.

산들이 얽히고 얽혀 산맥을 이루어낸 안데스. 이 척박한 땅에도 생명체가 살아갈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여러 동식물이 있습니다. 다람쥐 격인 파타고니아 비버가 부지런히 진행하는 앞을 가로지르며 우리의 앞길을 안내하고 친숙한 토끼풀이 꽃을 피워 세잎 크로버의 잎들에 쌓여 불쑥 헹가래를 당해 허공에서 바람에 떨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산은 거대 분재 전시장입니다. 혹독한 기후와 환경에 자라지 못한 나무들은 세월만 먹어 것늙은 노인의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자양분과 광폭한 바람에 가지는 뒤틀리고 성장은 억제되어 몸집만 부풀어지는 기형의 나무들이 되어 파타고니아의 그림을 아름답게 채웁니다. 이처럼 치명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요소는 되나 그 처절한 생의 이음을 생각한다면 그 얼마나 애처러운 아픔인가? 꽃이나 들풀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가슴이 싸해지는 순간입니다. 그 산 하나를 넘으니 넓은 시야가 확보되면서 왼편으로 팜파스로 향해 산타 크루즈 강이 흐리고 양편으로 연이은 설봉들이 말달리듯 이어지다 모여드는 곳. 그곳에 세로 토레가 선명하게 기골장대한 위용을 갖추고 근엄하게 서있습니다. 이제는 저 토레를 향하여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 한발한발 다가가는 것입니다.

잠시 쉬어가는 길. 길에서 벗어난 바위에라도 걸터 앉아 한숨 돌릴 수도 있겠지만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 이끼 한조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이 자연의 조화가 무려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진 인고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섬뜩한 이유에 차마 그 자연위에 발자국 하나 조차도 내지 못하겠더이다. 그래서 파타고니아의 자연이 더욱 처절하도록 아름다운건지도 모릅니다. 거의 호수에 이르렀습니다. 왼쪽엔 세로 토레 등정을 위한 거점 캠핑장이 있고 길은 바위 투성이의 너널지대라 가파른 경사를 완화하려 이리저리 휘둘러 놓았습니다.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합니다. 등반의 전망대 길이 험난하다 하여 지름길을 택할지언정 돌아갈수는 없는 길. 앞으로 걸어야 할 인생의 길도 이곳 파타고니아의 산길과 그리 다르지는 않을듯합니다. 드디어 일차 정상에 올랐습니다.

클라이머들이 먼저 몸을 푸는곳이라는 세로 솔로가 먼저 나오고 호수가 아름답게 누워 있는 라구나 토레 전망대가 이어집니다. 호수 끝자락엔 빙하가 흐르고 있고 그 시작점을 쫒아 시선을 위로 치켜올리면 명산 세로 토레가 나타납니다. 태평양의 습한 공기는 안데스 산맥을 넘으면서 눈을 뿌리는데 그 눈이 녹고 얼고를 수없이 반복하여 세로 또레의 빙하를 만들었습니다. 신이 빚어낸 대 자연의 조각들. 파타고니아를 풍요롭게 하는 이 정갈하고도 순수한 자연. 그것들이 바로 파타고니아가 신이 내린 마지막 선물이라 부르게 하는 이유입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미주트래킹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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