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진출, 역사·문화 이해가 먼저

'왜(Why) 아프리카인가'를 넘어 이제는 '어떻게(How) 아프리카를 준비해야 하는가' 에 대해 고민할 때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를 지배·정복하는 세력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정복하지 못했다면 로마는 이후 세계사의 주도권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노예무역과 식민 지배는 유럽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21세기에 아프리카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는 작년에 열린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담을 통해 '왜 아프리카인가', '왜 우리는 아프리카를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아프리카는 시장과 자원,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대륙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아프리카에 진출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아프리카를 이해해야 할까.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문화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가 필요하다. 아프리카인(人), 아프리카 대륙을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의 공동체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의 '이익'은 무엇인지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중심주의 시각(Afrocentric perspective)에서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런 이해 없이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으며 오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 10여 년 전 어느 날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모잠비크인 여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 교수는 한 학생이 필수과목 시간에 미국사나 유럽사가 아니라 아프리카 역사를, 그것도 생소한 마풍구브웨(Mapungubwe) 왕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데 항의를 하였다며 많이 흥분해 있었다. 그는 남부아프리카의 최초의 문명인 마풍구브웨 왕국의 역사를 모르면서 어떻게 세계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이 세계사에 대해 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 한다면, 아프리카에 진출하고 싶다면 균형 잡힌 세계사를 알아야 할 것이 틀림없다.

아프리카는 한 국가가 아닌 대륙으로 복합성과 다양성으로 가득하지만 '아프리카'라는 공통의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이 존재한다. 왜 아프리카는 노예무역과 함께 오랫동안 식민 지배와 침탈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문화에 동화되거나 흡수되지 않았을까. 19세기에 한 선교사가 마사이족 마을을 보고 특별히 내세울 문명이 없는 마사이족은 유럽의 훌륭한 문명을 접하게 된다면 흡수·동화되리라 단언하였는데 마사이족은 여전히 자신의 문화를 지키며 동아프리카의 초원지대에서 살고 있다. 한국, 중국, 인도 등 과거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독립하여 발전하고 있는 이유가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도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프리카는 마지막 남은 기회의 대륙이며 블루 오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정작 알고 있는 지식은 얄팍하다. 사업을 하면서도 아프리카 현지에 대해 이해를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혹시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와 인식이 타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전해진 것이며 정보와 지식의 부족, 편견과 무지 그리고 선입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아프리카 대륙의 언어 수는 약 2천34개가 있다. 스와힐리어(Kiswahili)는 아프리카의 제1 언어이며 세계 12대 언어에 속할 뿐만 아니라 한때는 유엔에서 공식어로 채택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세계에서 훌륭한 대학교의 평가 기준과 관련, 아프리카학 강좌 또는 아프리카의 대표어인 스와힐리어 강좌의 유무가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혹시 아직도 우리는 아프리카인을 말할 때 식민지배 시기 아프리카인을 비하하여 부르던 '부족'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유럽의 한 나라 사람을 부족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아프리카의 더 큰 민족집단을 '부족'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며 '민족', '종족'이라는 말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음비티(John S. Mbiti)는 아프리카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악명 높을 정도로 종교적'이라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의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 토착종교 순으로 우세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북부의 이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토착 종교가 우세하다. 북아프리카의 '아프리카로 간 이슬람'은 아프리카적 요소를 갖고 있으며 기독교가 우세한 사하라 이남 지역은 아프리카 토착화한 '아프리카 독립교회'(Africa Independent Church) 혹은 '분리 교회'(separatist church)의 세력이 강하다.

'아프리카는 어른을 공경한다.' 아프리카에서 '경험 많은 어른들'은 오래 살았기 때문에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이 서열은 아주 중요하며 연령 질서(age order)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요소다.

아프리카인은 전통적으로 놀이문화 또는 여가문화를 가치 있는 일로 여기며 공동체가 함께 참여한다. 잔지바르와 몸바사에 가면 골목에서 전략 보드 게임의 일종인 바오(bao) 게임을 하는 것을 항상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인은 스포츠를 좋아하며 특히 축구를 아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함파테(HampataBe)는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고 말하여 아프리카 구전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문자(非文字)·무문자(無文字) 사회의 특성상 신화, 전설, 찬양시, 속담, 이야기, 그리고 음악 등은 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 아프리카의 전통문화 특히 의식주, 가치체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 아프리카의 문화 트렌드는 자연과 조화를 중시한다 ▲ 아프리카인은 색(色)과 미(美)를 추구한다 ▲ '음악을 위한 음악',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 속에 음악과 예술이 함께한다 ▲ 아프리카인은 의식(ceremony)과 행사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다 ▲ 아프리카인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1세기 떠오르는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우리의 대(對)아프리카 진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분명히 아프리카는 마지막 남은 기회의 대륙이며 떠오르는 아프리카를 위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현지의 지역정보, 토착정보를 알아야 한다. 자연지리적 특징, 관습, 금기, 전통적인 통치, 토지, 역사·문화적 특징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현지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문화다. 자긍심·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필요해서 하는 사업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아프리카 진출을 위해서는 아프리카 전공자인 학자, 정부 기관, 기업인 등이 머리를 맞대고 현장 중심의 진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광수 교수

현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남아공 노스웨스트대 박사, 저서 '서아프리카 역사 이해' 등 45권 집필, 한국연구재단·한국국제협력단(KOICA)·문체부·외교부 등 각종 기관의 강의·연구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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