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캐비닛 폭탄' ①규모 ②이유 ③정치권 반응 ④e지원 재조명
07/21/17청와대의 이전정부 문건 발견은 횟수를 거듭하며 그 양이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가 국민적 관심이 높다며 공개하는 일부 내용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연결된 것 위주이지만 법적으로 공개하지 못하는 민감한 내용도 포함된 걸로 보인다. 엄격히 관리돼야 할 문서가 청와대 캐비닛에, 책상서랍에 방치되다시피 남은 이유에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청와대가 이걸 공개하는 데에도 정당별로 다양한 셈법이 존재한다.
◇300건→1361건→더많다= 첫 발표는 지난 14일이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전임 정부의 민정수석실에서 생산한 문건들이 발견됐다"며 약 300종의 문서를 찾았다고 밝혔다.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 장관 후보자 인사자료, 각종 현안 검토, 지방선거 판세전망 등이다. 발견 일자는 지난 3일. 문재인정부 들어 쓰지 않던 공간의 한 캐비닛을 열자 문서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법률 검토 등을 거쳐 공개까지 11일이 걸렸다.
14일에 추가발견돼 17일 공개한 문서들도 있다. 17일 박 대변인은 "전 정부의 정책조정수석실 기획비서관이 작성한 것으로 총 1361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발견 지점은 현재 정무수석 산하 정무기획비서관실 입구의 행정요원 책상 아래 캐비닛이다. 잠겨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17-18일 모든 사무공간에 전수조사를 벌였다. 국가안보실과 국정상황실 등 캐비닛 3개에서 문건이 다시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 문서들은 너무 양이 많아, 쌓인 모습을 사진을 찍어 공개할지 청와대가 검토했을 정도다. 20일 공개한 게 이 가운데 상황실 문건 504건이다. 안보실 문건은 후속 발표하기로 했다.
박근혜정부 문서로만 한정할 수도 없다. 숫자는 극히 작지만 이명박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문서도 발견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두건이 끼어있는 정도이고 대부분은 박근혜정부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까지 공개한 문서 중 하나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국면'에 화살표(→)를 그리고 '기회로 활용'이라고 적고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정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거다. 삼성물산 합병 관련 정부지원이 드러나지 않게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 등도 담겼다. 이밖에 박근혜정부가 서울시 청년수당 지급을 강행하면 지방교부세를 깎는 등 '응징' 방안도 고민한 걸로 드러났다.
◇누가, 왜 남겼나..'내책상'만 치웠나= 문서들이 상당량 남겨진 배경에는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 담당자의 실수, 인수인계와 관리과정의 부실, 의도적인 은닉(?) 으로 좁혀진다. 참여정부 등 청와대 경험이 있는 정치권 인사를 종합하면 인수인계 부실에 가장 무게가 실린다.
청와대는 '어쩌다 공무원'(어공)이라는 별정직과 기존 부처에서 파견식으로 근무하는 공무원(늘공), 청와대 소속인 직원들이 뒤섞여 일한다. 일손 바뀜이 꽤 자주 일어난다. '늘공'은 1~2년 단위로 친정에 복귀한다. 정치인 출신의 어공이면 선거출마 등 다양한 이유로 교체주기가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럴수록 업무 인수인계가 필요했지만 원활하게 되지 않은 걸로 보인다.
'업무 칸막이'도 한몫했다. 정부 말기 문서를 대량 파쇄하거나 일상적으로 문서를 점검하는 과정에 본인이 생산했거나 관리대상이 명확한 이른바 '내 책상' 위의 서류만 정리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발표대로면 민정수석 관할의 문서는 민정비서관실 캐비닛 중 하나에서 나왔다. 개인용보다는 여럿이 함께 사용했을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캐비닛에 무슨 수석실 이렇게는 써있는데 홍보수석실 캐비닛이 정무수석실에 가 있고 이렇게 혼재돼 있더라"고 했다.
청와대 근무경험이 있는 여권 관계자는 "담당자가 교체되고 후임자가 빠져 나가는 과정에 인수인계가 안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공유하는 캐비닛에 문서가 있다면 '내 전임자'의 것보다 함께 일하는 누군가의 것으로 여겼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명확한 관리소재를 모른 채 탄핵정국 가운데 문서의 존재도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 말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는 민정수석 교체만 봐도 알 수 있다. '촛불'정국이 본격화한 10월 이후 우병우에서 최재경으로, 다시 조대환으로 급박하게 바뀌었다. 우 전 수석은 10월30일까지 일했고 최 전 수석은 10월31일 임명됐으나 박 전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12월 9일 사퇴했다. 이내 조대환 수석이 임명됐지만 헌법재판소가 3월 박 대통령 탄핵안을 인정하면서 조 수석이 마지막 민정수석이 됐다.
한편 의도설, 즉 양심적 내부 고발 아니냐는 해석도 일부 있다. 적극적으로 내부문제를 고발하지 못하고 문서를 남겨둠으로써 누군가 확인해주길 바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상황실 국가안보실 정무수석실 등 사실상 청와대 거의 모든 사무실에 누락 문서가 있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청와대 정보공개심의회 외부위원인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잇단 문서발견에 대해 "박근혜정부가 대통령기록 관리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엄청나게 방치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靑 "우리도 궁금"-홍준표 "보복 쇼"= 청와대·여당과 야권의 시선은 엇갈린다. 문서공개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아니냐는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등에 영향을 미치려는 '사정' 의도라는 의혹이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나 "왜 남아있는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공개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지정기록물은 청와대에 남아있으면 안 된다. 대통령기록물법상 '회수' 즉 기록관으로 옮기게 돼 있다.
문 대통령은 17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업무시스템 관련 관련 보고를 받고 “전임 정부의 문건 사고를 남 얘기처럼 보지 말고 새로운 시스템에 제때 적응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시각은 "박근혜정부의 청와대가 최순실 국정농단에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핵심증거"(강훈식 원내대변인)이다. 반면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19일 청와대 회담 후 "누가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작성했는지, 많은 부분을 규명해야 할 일"이라고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아예 정치보복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그는 "작성불명의 서류뭉치를 들고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며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보복 쇼"라고 쏘아붙였다. 한국당은 박수현 대변인 등 청와대 관계자를 공무상 비밀누설 및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한국당의 태도가 '자해'라고 되받았다. 노 원내대표는 "남기지도 않은 문건을 조작했다면 정치보복일지 모르겠는데 자기들이 문건을 남겼으니까 정치보복 이전에 자기들이 정치적 자해를 한 것"이라고 했다.
◇이지(easy)한 'e知園'..가치 재조명= 청와대 문건 파문에 전자문서를 비롯한 온라인 업무관리방식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전자관리 방식으로 문서의 종류와 수량이 철저히 파악되지 않은 것도 한 배경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임기 첫해인 2003년 3월 게시판 위주 일종의 인트라넷을 구축했고 그해 11월 업무일지 기록 중심의 'e지원' 시스템을 열었다. 청와대 녹지원에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이후 문서관리시스템, 과제관리시스템 등을 차례로 구축했다.
노무현대통령 비서실에서 2007년에 펴낸 '대통령 보고서'에 따르면 e지원에 오른 문서는 말단 행정관부터 최종 결정권자 대통령까지 해당 문서의 진행 단계, 참여자들의 의견 코멘트, 결재여부 등을 알 수 있다. 정부 혁신, 정책 실명제의 기반이 된 걸로 평가 받는다.
이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2006년 2월에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개발팀 5명이 특허를 취득해 화제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KBS 대통령 대담 프로그램에서 "국민들이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정부혁신이 있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대통령비서실 업무관리시스템, 이지원을 만든 것"이라며 "그것만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시스템이 '만능'이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온라인으로 문서를 효율적으로 관리, 파악하는 데 유용했다. 노무현정부때 이처럼 강조됐던 온라인 정책정보관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다시 서류 중심으로 돌아왔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는 서류 위주의 업무로 회귀했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이지원이 청와대전용이었다면 이걸 정부 범용으로 만든 게 지금의 '온나라시스템'이다.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이것도 적극 활용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서류 방식을 택했다.
그 와중에 상당량의 문서가 누가 얼마나 출력, 복사했는지 모르는 상태로 청와대 사무실에 남게 됐다. 디지털 시대에 더이상 '아날로그 청와대'의설자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