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부 자이언 캐년 - 엔젤스 랜딩

자이언의 웅장한 위용
여장을 푼 자이언 캐년 인근의 허리케인에서 오늘의 트레킹을 위해 이른 아침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오는 길에 들렀던 불의 계곡에서의 몸풀기 산행도 오늘의 산행을 즐겁게 해주는 준비운동의 효과로 충분한 듯 가는 길에 절로 흥겨운 노래소리가 차안이 가득합니다. 캐년의 초입부터 펼쳐지는 신들이 머무는 거대한 성곽처럼 천지를 뒤덮은 바위들의 절경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없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산허리를 휘돌아 감은 구름빛이 짙어가고 하늘이 자꾸만 낮아지며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이 여간 불안하지 않습니다.

천길 벼랑길을 아슬하게 올라야 하는 오늘의 구간인데 미끄럼에 의한 낙상사고가 연상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멀리 안개구름에 가려진 자이언의 웅장한 위용은 신비함마저 머금고 용장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자이언에서 최고의 비경들만을 모은 곳은 자이언 캐년 시닉 드라이브를 타고 가며 이동하는 구간입니다. Emerald Pool, The Grotto, Weeping Rock, Temple of sinawava 등 명경들이 펼쳐지는 이 길. 자연의 오염과 훼손을 막기 위해 방문자 센터에서부터 출발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오일장을 나온 촌부처럼 여기저기 기웃기웃 구경하며 여유롭게 흘러갑니다. 엔젤스 랜딩과 웨스트 림 트레일이 시작되는 그로토 정차장에서 내려 채비를 갖추고 오늘의 여정을 떠납니다. 조금은 흥분한 느낌으로 첫발길을 내딛는데 순간 후두둑 비가 내립니다.

느닷없이 이루어질 비경과의 해후
드디어 올것이 오고 만것입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혹은 방수 재킷으로 무장을 하며 숫제 비를 맞을 준비를 합니다. 예상되었던 비라 하늘에 대한 원망도 없이 장도에 오르는데 저기 저 만치서 엔젤스 랜딩의 정상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거대하고 웅장한 남성적인 자이언에 동양적인 곡선이 아름다운 기봉하나. 4.5 토탈마일에 등정고도 1,380 피트 밖에 되지 않는 산행로지만 그 가파른 경사도와 한사람씩 밖에 지나지 못하는 날카로운 송곳길이 산객의 발길을 잡아 예정산행시간을 5시간으로 잡아야만 하는 곳입니다. 찌푸린 하늘가에 걸려있는 듯한 오늘의 정상을 목전에 두고 한없이 기뻐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입니다. 느닷없이 이루어질 비경과의 해후를 꿈꾸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그저 주어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산 전체를 휘돌아가는 길은 가지런히 닦아 놓았고 거대한 직벽 틈이 난 곳에 길을 내었습니다. 찬비에 젖어가는 거대한 절벽사이로 희끗 눈이 쌓였는데 그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들꽃들이 그들만의 정을 나누며 함초롬히 피어있고 비록 푸르름이 더해가는 오월의 녹음이래도 도저히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선인장들이 그 꽃을 피우기 위한 산고의 진통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한발 한발 정진하며 걸어 올라갑니다. 고난을 자처한 수도승이 되어 깊은 상념의 시간을 즐기며 바람에 몸을 맡겨 떠갑니다. 400미터 1차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 경사도를 완만하게 하기 위해 깊게 굽이치며 깔려있습니다.

뛰어 갈수도 달려갈 수도 없는 험한 길. 서두를 것도 없는 인생사. 한번 씩 살아온 길 되돌아보듯 우리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 봅니다. 우리들이 살아온 영욕과 질곡의 삶이 그 고단한 인생길처럼 굽이굽이 휘돌아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나긴 길이었습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던. 그러나 마침내 다다른 이곳. 인생의 한 정점. 한 목표를 이루었으니 다음 단계로 발을 옮기기 전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또한 우리의 생을 반추해봅니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더 보람있게 살아야 할 인생도 남아있습니다. 머리 들어 올려다보니 고일 곳 없는 바위산에 내린 비가 폭포가 되어 길게 여운을 남기면서 바람에 흩날리며 협곡을 적십니다.

삶은 일체유심조라 했던가
마지막으로 오늘의 구간 중 가장 험난하며 위험한 1마일이 남아 있습니다. 간단없는 비로 길은 미끄러워 매우 위험합니다. 여기서 포기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우리는 기어코 천사들이 하강하여 속세에 임하는 곳을 보기위해 신발끈을 다시 동여맵니다. 말발굽처럼 휘어져 도도히 흐르는 버진 강의 굽이침과 솟구친 바위산이 희귀한 풍광을 선사하는데 양편으로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쇠줄을 잡고 조심스레 구간을 오릅니다. 쇠사슬을 움켜쥔 손위로 우박같은 찬비가 내려쳐 통증마저 느끼게 합니다. 줄을 놓치거나 실족하게 되면 황천길이 멀지 않습니다. 시야를 멀리 두지 못하고 한발 한발 힘겹게 조심스레 옮겨가며 그래도 두고 갈수 없는 아쉬움이 회한으로 남을까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발아래 펼쳐지는 천상극치의 황홀경을 가슴에 담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조심스레 옮기는데 코앞에 붉은빛으로 타는 야생화가 비좁은 바위틈에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저처럼 미물도 처연하게 생을 영위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그것도 산을 오른다는 산사람이 이리 산을 두려워 하는가하는 자조섞인 한탄을 내뱉고 굳건하게 정상을 향합니다. 산은 이처럼 작은 생명에게서도 인생의 진리를 배우게 하는 곳. 마음을 바꿔 먹으니 발길이 한결 가볍고 정상은 더욱 가까워 보입니다. 삶은 일체유심조라 했던가!

엔젤스 랜딩. 천사들이 내리는 아름다운 정상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늘은 더욱 내려앉아 우리들의 정수리에 머물고 가늘게 내리는 봄비에 시간마저 정지하여 젖고 있습니다. 용의 등처럼 휘어진 정상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겨왔을지 예감할 수 없는 거대한 노송들이 휘늘어져 있습니다. 어디에도 의지가지 없고 마음 둘 곳 없는 뿌리들이 그 모진 생을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남아 불모의 바위 지표면에 그대로 벌거벗은 채 방치되어 기형의 거목이 되어 있습니다. 정상을 정상답게 만드는 노송의 무리들이 자이언 캐년의 유구한 역사만큼 휘어지고 비틀어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선사이래 변함없이 도래샘이 발아래 흐르는 별천지에 우뚝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기봉 하나. 엔젤스 랜딩. 우리는 천사들이 천상에서 내리는 이 아름다운 정상에 서서 비안개에 젖은 준봉들을 둘러봅니다. 조금씩 감춰진 비밀 때문에 더욱 신비다움은 아름다워지는 법. 운무에 가려진 자이언의 산봉들이 우리 여생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기막힌 수려함으로 가슴에 새겨지고 있는 순간입니다. 이 고독한 정복의 균형이 깨어질까 소리 죽이고 숨죽여 그 환희의 기쁨을 조용히 나눕니다. 360도 조망이 가능한 정상에 서서 차분히 몸을 돌려 한각도 놓치지 않고 기억의 망막에 아로새깁니다. 전율로 전해오는 천하를 얻은 듯한 기쁨에 빗물은 눈물이 되어 가슴을 적시고 흐릅니다. 긴 세월의 별리 후에 얻은 분별없던 첫사랑과의 느닷없는 해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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