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3대 캐년 산행 후기-그랜드 캐년 노스 카이밥 트레일 #2

신비로운 천연의 굴 Supai Tunnel을 지나고 적벽이 둘러싼 계곡을 가로지른 Redwall Bridge를 건너고 맹렬하게 쏟아내는 Roaring Springs에 이를 때 까지는 가파른 비탈길로 천미터를 내려가는 길입니다. 200파운드의 무거운 체중이 무릎에 모두 실리니 아무리 내 몸이라도 여간 미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람을 감고 도는 산모퉁이에서 결코 지칠 수 없는 여정을 잠시 멈추고 눈앞에 다가선 비경을 감상합니다. 로링 스프링스, 이름 그대로 노호하는 샘물인데 깎아내린 절벽 틈바구니에서 어디서 저리도 넘치도록 많은 물들이 모여 내리는지 불가사의한 풍경을 연출해보입니다. 그 물은 협곡의 골마다 적시며 흘러가 콜로라도 강에 보태어지는데 이름마저도 성스럽기까지 한 브라이트 엔젤 시냇물입니다. 반가운 해후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신발을 벗고 청정한수에 발을 담그고 족욕의 휴식을 즐깁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해져 오는 상쾌함이 땀에 젖은 몸마저 말려줍니다.

서산에 비낀 햇살이 구름 속에서 나와 갈 길이 멀다하고 일러 줍니다. 다리를 건너 해를 오른편 가까이에 두고 이제는 여유있는 평원을 가볍게 걷는데 청아한 물소리를 내며 냇물도 함께 따라 걷습니다. 꽃과 풀과 나무와 돌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들, 스치는 모든 것들과 인연을 맺으며 그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니 우리도 자연과 하나 되어 깊이 동화되어 갑니다. 계절을 건너 무더운 여름 속으로 진입하니 선인장들이 언제 개화를 하여 또 져버렸는지 화무십일홍의 처참함으로 너부러져 있습니다. 어둠이 다가오기 때문인지 풀벌레 소리 요란하고 새들도 부산하게 쏘다닙니다. 마음만 앞선 산행 길에 저만치 팬텀랜치 에서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진한 음식 향내를 풍기는 듯한 착각이 입니다.

지금보다 더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
서녘에 드리운 산그늘이 더욱 짙어만 가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그린다는 그랜드 캐년의 석양을 보기위한 조바심이 다급해진 잰걸음에 보폭마저 넓어집니다. 그래도 양편으로 펼쳐진 기암절봉들이 표현하는 온갖 형상들에게 우리는 합의하에 다양한 작명을 해줍니다. 성화 봉, 곰돌이 푸, 여인 봉, 남근 봉 등등, 협곡을 휘감아 돌며 어느 하나도 닮은 것이 없는 조물주의 작품에 찬탄을 금치 못하며 피곤하도록 좌우 목운동을 합니다. 저 모퉁이를 돌면 종착점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돌아가면 또 다른 계곡이 펼쳐지고 또 그것이 반복되고 하면서 그랜드 캐년의 협곡은 좀처럼 끝나려 하지 않습니다. 발목에 묵직한 추를 달아놓은 듯한 무게만큼 피로가 쌓이면서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습니다. 지친 여정, 뒤돌아보면 동행이란 아름다운 이들의 눈길과 마주칩니다.

옅은 미소로 서로를 격려하며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캐년을 하염없이 내려갑니다. 이처럼 새로운 모험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새로운 나를 찾아가고 그리고 더 나은 나를 만들러가는 여정입니다. 내가 정한 그 종착점에 이르면 더욱 생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기에 우리는 그 미지의 길을 찾아 떠납니다.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혹독하리만치 어려운 고난이 닥쳐올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순간 이 한계의 벽을 넘고 나 자신을 넘었던 나를 기억해내고 그 역경을 견디어 나갈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산을 그리워하고 또 산을 오릅니다.

캐년 가장 낮은 곳의 밤은 적막속에 깊어가고
아무래도 다급한 마음에 일행을 뒤로 두고 달음박질로 콜로라도 강으로 향합니다. 가슴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캐년의 석양이 보고파 혼자 내달립니다. 검은 서산 뒤로 붉게 타오르는 태양빛이 가까이 다가와 유혹하고 있는데 인간이 낼 수 있는 보속의 한계를 실망하며 그래도 최선을 다해 내달립니다. 어둠은 더욱 짙어가고 가까스로 9시경에 랜치에 다다랐으나 첩첩한 산으로 막힌 서녘은 그저 붉게 달구어진 하늘만 드리우고 있을 뿐 그 사진 속에 본 황혼의 비경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몸마저 쇠잔해져 길섶에 쓰러져 누워버립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가는 이들의 손전등빛이 수런수런한데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랜드 캐년의 낙조가 꿈결처럼 아련하게 그려집니다. 귀에 익은 언어로 떠드는 일행들이 다가왔을 때 그때서야 선잠에서 깨어나 동무들을 맞습니다. 길가에 허접하게 마련된 피크닉 테이블을 하나 얻어 걸쳐 정찬을 마련합니다.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 이런저런 밑반찬으로 마련한 늦은 저녁을 온갖 무용담과 함께 또 그 수다만큼 맛있게 마감하고 잠자리를 마련하는데 열대야처럼 무더운 날씨에 텐트를 치는 것이 오히려 더 더울 것 같아 숫제 메트리스 위에 텐트를 덮고 자버립니다. 내일을 위해 그리 이르지도 않은 잠을 청하는데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은 17마일의 거리에 1800미터의 높이를 하루 만에 올라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만이 아니라 음식을 훔치려는 오소리며 삵 같은 들짐승의 습격에 대한 염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지한 사실이지만 모든 배낭을 높이 메달아 놓았는데도 날쌘돌이 놈이 쉽게 접근하여 신발을 던지며 쫒아내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도 밤은 소리 없이 익어가고 더욱 가까워진 밤하늘엔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며 신혼의 허니문처럼 밤을 설레게 합니다. 간단없이 일정한 소리로 흐르는 시냇물소리에 열대야의 무더위도 녹아내리고 롯지와 텐트의 간이 전등불빛도 하나둘 꺼져가며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도 점점 간헐적으로 들리더니 어느덧 그랜드 캐년 가장 낮은 곳의 밤은 오늘의 산 이야기를 접어두고 적막 속으로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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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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