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팔레치안 트레일 셰난도어 종주기 #2

저마다 다양한 사연들을 품고 산으로
종주에 함께 한 이들의 구성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팔순을 이태 남겨놓은 분, 삼십년만에 산행을 하게 되었다는 분, 남편이 입버릇처럼 셰난도어를 종주하자고 말하더니 부재중이라 혼자 참가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분, 주말산행에 빠지지 않고 다니지만 종주의 기회는 없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고 기뻐하는 분, 마침내 병석에 누운 아내의 간절한 소망으로 건강을 위해 처녀산행을 한다는 분, 저마다의 인생만큼 다양한 사연들을 품고 산을 찾았습니다. 그런 아픔과 기다림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듯 산은 여러 가지 형태로 화답을 해줍니다. 노목과 기암들이 도열한 셰난도어의 한 비탈길을 묵묵히 올라 다다른 산정 드넓은 곳에는 노란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목초지(Meadow)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제주의 유채밭을 연상케하는 노란 꽃들이 마구 들판을 달리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합니다. 나잡아 봐라하는 낯간지러운 유치함도 용서될 것 같은 풍광입니다. 어느새 중천에 머무르는 태양이 밝은 빛을 쏟으니 삼라만상이 생기롭게 빛나고 한줄기 지나가는 바람에는 훈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열리고 혼탁한 심사가 깨끗하게 씻기어져 버립니다. 자연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조연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띕니다. 암수 정다운 사슴들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청명한 기후에 나들이를 나섰고 보기 쉽지 않은 야생 칠면조들도 짝을 지어 돌아다닙니다. 야성을 잃은 듯 우리들의 접근에도 별 경계심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제 갈 길을 서두르지 않고 갑니다. 참 여유롭다는 부러움이 입니다. 자연이 선사하는 이 평화로운 그림 속에 우리가 한때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보상받은 산행이었습니다.

마음의 배낭을 털어 버리고
7마일 지점인 Jerman Gap을 지나 와인으로 정상주 한잔씩 순배하고 처녀등산이 마음과 달리 몸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이들과 이날따라 개운치 않은 컨디션을 토로하는 이들 네 명을 차량으로 먼저 보내고 나머지 일행들이 줄을 지어 3마일 구간을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마지막 피치를 올립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Sawmill Run 전망대 까지 힘든 구간의 대명사 깔딱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1천 미터도 못 미치는 고도이건만 셰난도어의 산정에는 고산에서만 볼 수 있는 여러 현상이 나타나는 특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사목들이 가득 채워진 정상은 태초의 원시를 그대로 보여주고 켜켜이 쌓인 이끼와 공생하는 기암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가을이 먼저내린 산정에는 지난 혹독한 가뭄에 엽록소의 변화로 이른 단풍이 곳곳에 익어있고 태풍 아이린이 핥고 간 자리에는 무성한 낙엽들이 깊은 가을처럼 쌓여있습니다. 계절을 넘는 이 순간에 잠시 세월의 허망함을 느끼는데 앞서 걷는 7순의 넋두리가 귓전에 다가옵니다. 인생은 삐거덕 거리고 몸은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데 이놈의 세월은 한번도 고장 날 줄을 몰라. 자신의 연배만큼 빠른 시속으로 세월은 흘러간다는 아쉬움도 덧붙입니다. 견줄 수 없는 짧은 인생으로 그래도 들은 풍월 하나 있어 살아있는 동안 오늘이 님에게는 가장 젊은 날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이런 저런 허접한 인생사로 가파른 길을 쉬어가면 오르니 출발 5시간 만에 Sawmill Run에 올랐습니다. 정상이 주는 선물. 아득한 산아래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몰아쉽니다. 더디게 가려하는 여름날의 햇살이 아무래도 그 열기만큼은 그때만 못합니다. 정상에 서서 세속의 모든 잡다한 번뇌를 쏟아버리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담게 될 삶의 앙금들을 위해 마음의 배낭을 털어 비우고 길을 돌아옵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미주트래킹을 참조하세요

의견 등록


사이트 기준에 맞지 않는 욕설 및 수준이하의 비판, 모욕적인 내용은 삭제됩니다.

Us    

관련 커뮤니티

제목 등록 조회 일자
사우디관광청, 가족여행 버킷리스트 4선 소개 글로벌한인 197 05/07/24
쿠바 방문자의 미국 ESTA 거절 관련 안내 글로벌한인 993 03/11/24
2024년 화천산천어축제 '절정' 글로벌한인 1245 01/22/24
철원 한탄강 얼음 트래킹 축제 성료 글로벌한인 1329 01/21/24
ESTA(여행허가전자시스템) 관련 안내 글로벌한인 1754 01/11/24
제15회 평창송어축제 개막…31일간 대장정 글로벌한인 1482 12/31/23
세계적인 화천산천어축제 서막 오른다…23일 얼음조각광장 개장 글로벌한인 793 12/22/23
화천산천어축제 내년 1월 6일부터 23일간 글로벌한인 1036 12/04/23
충남 보령시 천북 굴축제 12월 2∼3일 글로벌한인 1185 11/27/23
속초 '양미리·도루묵 축제' 개막 12월 3일까지 행사 글로벌한인 1949 11/26/23
이스라엘 특별여행주의보 발령 안내 글로벌한인 6948 10/12/23
한국에서 발급 받은 국제운전면허증으로 관할지역 운전 시 유의 사항 안내 글로벌한인 6748 08/25/23
루브르·수족관·모스크…문화와 관광의 오아시스 아부다비 글로벌한인 6675 08/17/23
쿠바 방문자의 미국 ESTA 거절 관련 안내 글로벌한인 7335 08/01/23
전자여행허가제(K-ETA) 한시 면제 대상 국가∙︎지역 안내 글로벌한인 6682 04/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