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5 - Kesugi Ridge Trail.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디날리를 떠나 Parks Hwy를 타고 남하하면서 장대한 풍경에 취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Byers 호수로 빠져 캠핑장 사이트 하나 잡고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게 됩니다. 그래도 주위는 대낮 같아 식 후 소화제 같은 담배 한개비 맛있게 피우는데 내 시선이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생연기를 따라가다가 마른 하늘을 쳐다 보게 되었습니다. 멀리 동편 하늘에 반짝이는 어린 별 하나. 초저녁 하늘에서 달에 이어 두번째로 밝게 빛나는 샛별 금성(Venus)입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이 별이 가장 먼저 떠 반짝이면 양들을 몰고 낙타의 나무 종소리를 음률로 들으며 등대처럼 길잡이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 그래서 '양을 감추는 별'이라고 부른답니다. 유목민 출신으로 글로벌 모델이 되어 활약하는 와리스 디리의 여성 할례를 고발하는 책에 묘사된 표현입니다. 낯선 길위에 서 있을 때면 혼자이던 무리를 지어있던 저 별이 떠있을 시간이 오면 항상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젖어듭니다. 군중속의 고독이랄까! 하루의 고단한 여정 뒤에 오는 허탈감이랄까! 시간이 지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제법 센티해지는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한번씩 이렇게 사념에 젖어 내 삶의 근원적 문제와 방향을 정리해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희미한 별들이 퇴색한 빛을 발하는데 한번씩 별똥별들이 저 넓고 깊은 바이어스 호수에 떨어지는 짧지만 아름다운 밤이 깊어갑니다.

Kesugi Ridge 트레일. “Epic”! 이 트레일을 두고 미국 등산 칼럼리스트가 표현한 헤드라인 입니다. 대서사시. 거의 알파인 존인 능선을 따라 32여 킬로미터를 걸으며 장대하고도 웅장한 디날리 산군의 서쪽 사면을 보면서 걷는데 감히 천국을 엿보았다고 표현합니다. 이 릿지 트레일을 밟기 위해서는 네곳의 산행 시작점이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트레킹 시작점을 찾는데는 대륙을 종횡단 하는 길마다 마일 포인트를 세워두었으므로 찾기가 참 쉽습니다. Parks Highway 라는 디날리와 앵커리지를 이은 길 138마일 지점에 있는 Byers 호수를 낀 Troublesome Creek 캠핑장과 164마일 지점에 있는 Little Coal Creek Trail 사이에 있는데 모두 4~7km를 오르면 케수기 릿지를 만나게 되는 'ㄷ'자 형태의 산행로입니다. 58km의 긴 길이라 하룻밤 야영을 각오한다면 해볼만한 코스입니다만 당일 산행으로 추천하는 루트는 Troublesome Creek 캠핑장에서 시작하게 되면 늪지대와 물의 범람으로 돌다리 유실등으로 젖을 수 있고 곰의 출현이 잦다고 하니 그야말로 트라블이 많아 Little Coal Creek Trail로 오르거나 156 마일 지점에서 시작하는 Ermine Hill Trail을 타고 올라서 릿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릿지에 이르기 까지는 5km 정도 거리를 500미터 고도를 오르면 되고 그 후 릿지는 역량과 사정에 맞춰 진행하면 됩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산악기후와 낙상에 주의해야 하는 돌길 그리고 모든 종류의 야생동물의 공격도 염려해야하며 자신의 한계내에서 걸어야 하는 길. 그러나 그길은 거대한 디날리 산군을 가까운 곳에서 조망하는 보상이 따르는 곳이랍니다.

비가 내립니다. 어제는 그리도 별이 총총하더니 언제 부터인지 모르게 비가 내렸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입니다. 가난한 나무들, 오솔길이 모두 내리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젖고 있습니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산을 깨우지 않으려고 가만가만 걷습니다. 밤새 젖었는지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나는 몸이 젖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젖어옵니다.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들이 어립니다. 그런 나를 산은 가만히 굽어보고 있습니다. 미리 예약을 하고 차지한 캐빈에서는 아침 공기를 데우는지 밥을 짓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스치는 장작 태우는 냄새가 계절을 태우는 것 같아 참 향기롭습니다. 지나치는 창으로 보이는 캐빈 안에는 촛불인지 랜턴 빛인지 맑은 빛은 아늑하고 오손도손 가까운 정을 나누는 것 같아 더욱 따스해 보입니다. 비에 젖은 채 발길에 차이는 잎새와 풀잎들. 비록 시몬의 사각거리는 낙엽밟는 소리는 아닐지라도 노랗고 하얗고 빨갛고 분홍도 있는 온갖 색으로 단장한 꽃길을 밟으며 아침 안개를 헤치며 걷는 길은 참으로 운치가 있어 좋습니다. 놀란 한쌍의 검은 새 황망히 다른 숲속으로 날아갑니다.

전나무와 떡갈나무들이 가득한 길을 걷다가 이제 알파인 툰드라 지역으로 오르게 되니 제법 올라온듯 싶습니다. 릿지에 올라서도 고개와 계곡을 번갈아 오르내려야 하니 높이 오르지 않는다 해서 결코 녹록하지 않은 길입니다. 바위 투성이의 길에는 마땅이 표시 할 방법이 없어 오래토록 지켜온 돌무덤(cairns)이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왠만큼 고도를 높이니 비도 개이고 나무 숲들 키너머로 산봉들이 먼저 솟아 오르고 황금빛 계곡이 내를 품고 펼쳐집니다. 오늘은 반드시 가야할 찍어야 할 목표가 없는 산행. 릿지에 올라 능력에 따라 적당한 시간 만큼 걷고 데날리 산군을 감상하고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어 좋습니다. 힘들면 쉬어가고 신나면 달려가고 힘에 부치면 천천히 가고 속도를 조절하니 그리 힘이 들지 않습니다. 길 주변에 있는 모든 자연물과 대화하며 가다보면 정신은 거기 가있어 몸은 자율 조종 능력으로 순항을 합니다. 그룹으로 와서 일행을 따라갈 수 있을까 염려하는 그래서 참가를 꺼리는 트레커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따로 B팀 혹은 C팀 까지도 따로 운영하며 부담을 없애 줍니다. 초기에는 거리, 고도, 난이도 최상 주의였었지만 인생 좀 더 살다보니 속도, 기록 경신 등이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겨집디다. 즐기자고 행복하자고 오는 트레킹 여행이 걱정과 고통으로 얼룩져서야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바꾸게 된거죠. 이 찬란한 풍광을 가슴에 품고 뇌리에 각인하여 여행이 끝나 일상으로 돌아간 뒤 그 여정들이 떠오를 때마다 웃음 머금고 회억해야야할 아름다운 순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리지에 올라 유장한 길을 바라봅니다. 외줄기 먼길은 계곡을 향해 가파른 내리막으로 뻗어 있다가 다시 치고 올라옵니다. 첩첩한 산들에 가린 길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휘어지는 어디서 끝이 나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냥 목표를 향하여 길 따라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산길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내가 가야할 인생길의 오르막과 내리막 길에서 미리 좌절하거나 섣불리 환호하는 일이 없어야 하듯 그저 나에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입니다. 비개인 후라 그런지 더욱 선명한 자태로 구름에 안겨있는 맥킨리 산이 저 멀리서 자신의 존재를 전설로만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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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대자연 알라스카를 걷는다. #5 - Kesugi Ridge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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