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버지니아 와일드니스 달리사드 #2

산을 떠나 또 다른 산으로 가는 길. 산이 또 다른 산과 만날 때 길은 어느새 하나로 이어집니다. 완연한 봄의 기운. 어느새 봄은 해발 1천 5백의 스프러스 놉에도 올라 이십여 마일을 차로 오르는 산길엔 단풍나무(Maple)며 층층나무(Dogwood), 미루나무(poplar)등 키 큰 나무들이 연보라며 하얀 꽃들을 피워내 묘하도록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정상 초입에 군서하는 박태기나무(redbud) 가지에는 설중매보다 더 짙은 색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서둘러 행장을 꾸려 산정 평원이 아름다운 허클베리 플레인 트레일을 걷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항상 물기가 가득한지 불가사의한 의구심으로 걷는데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성상의 이끼들이 미답의 신비를 품고 고산식물들과 함께 자생하고 있어 소중하고도 거대한 자연 식물원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온산을 가득 메운 전나무(Spruce)들이 드높은 기상을 보이며 시원스레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자연 그대로 순환을 거듭해온 증표로 나뒹굴고 있는 고사목들이 즐비합니다. 지구가 생성된 이래 아무도 밟지 않았을 것 같은 길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자 산행로에서 잠시 벗어나 두텁지만 부드럽기 그지없는 푸른 이끼위에 발 도장을 찍어봅니다. 천혜의 자연과 그 자연을 보존하려는 아름다운 사람들.

그래서 오늘 오르는 스프러스 놉의 봄 산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도 명산이 있거늘 언제나 우쭐한 마음으로 머나먼 타주로 하늘 다른 타국으로 전전했던 지난날이 조금은 무색해집니다. 항상 머나먼 곳을 바라다보며 뭔가를 갈구해온 지난날들. 어쩌면 그 소중한 것들이 가장 내 가까운 곳에 있으며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주어진 삶속에서 자신의 몫을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산. 산은 이 시간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집니다. 이렇게 대단한 대자연 앞에 서면 지난날의 자만과 교만이 부끄러워지며 숙연함으로 머릴 조아려 겸허해 지게 됩니다. 유난히 거칠게 지나가는 정상의 바람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숨소리처럼 여겨집니다.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탑위로 나도 우리 모두의 안녕과 장수와 건강의 바람을 채곡채곡 올려놓습니다. 얼마나 사무친 그리움으로 두 개의 몸이 하나의 나무가 되었을까 싶은 연리목의 그림자가 어느새 길게 늘어지는 시간, 서산의 보랏빛 낙조가 그윽하게 온 누리에 드리웁니다.

숙소인 가나안 밸리 산장지역에 이르러 벽난로에 불을 지피니 조용한 저녁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과를 끝내고 난 뒤 내리는 비는 그렇게 평화롭고 안락할 수가 없습니다. 유리창을 두드리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짙은 안개 속에 저물어 가는 하루를 되돌아보며 아무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내리는 비만을 주시합니다. 바쁜 일정을 놓아버린 허전함도 삶의 충만한 포만감도 모두 생의 한 즐거움으로 침전되는 순간입니다.

분주한 식사준비와 끊이지 않는 담소 그리고 주고받는 한잔의 정들이 쌓여 가면서 산장에서의 밤은 그렇게 나그네의 시심처럼 익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밤이면 싸늘한 기온이 감도는 산촌의 한데. 잘 데워진 자쿠지 욕조에 들어 심신의 피로를 녹이고 있는데 머리며 어께에 내리는 차가운 비는 상극의 대비를 느끼게 하면서 한겨울에 즐기던 노천온천욕을 연상케 합니다. 깊은 밤, 핏빛 보다 더 진한 와인잔 속으로 빗물이 튀고 동료들과의 잔잔한 얘기는 긴 여운의 웃음으로 남으며 산장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련하게 가슴에 새겨지고 있었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 와일드니스 달리사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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