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인 이민사 다룬 다큐 '무지개 나라의 유산' 이진영 감독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Words of Wisdom From the Rainbow State)을 만드는 동안 그 시대, 118년 전인 1903년 하와이에 사는 듯한 착각에 빠졌어요. 미주 한인 이민사는 그 자체로 감동이고 감사입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이진영 감독은 첫 연출작 '무지개…'으로 지난달 '중국 국제 뉴미디어 단편영화제' 결선에 진출했고, 자유와 인권을 화두로 삼은 국내 '리버티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신인 감독상을 받았으며 '제41회 하와이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 상영됐다.

앞서 9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티 영화제' 결선에 올라갔고 같은 달 30일에는 인도 타고르 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 제목의 '무지개 나라'는 하와이를 의미한다. 하와이는 인종이 다양하며 이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섬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영화 본편 마지막 회 촬영차 방한한 이 감독은 1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나라의 이민 역사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조들의 당시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최근 한국 내 다문화 사회가 오버랩됐다"며 "과연 당시 하와이 사회가 우리 선조에게 베풀었던 관용과 포용을 지금, 우리는 베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본편 마지막 회의 주인공인 이정진 전 고려대 교수가 쓴 '금강산의 보라부인'에 나오는 이야기로 영화 제작 의도를 대신했다.

"고통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거라면 네 어미에게 도움을 받아라. 네 어미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너를 낳았다. 어미의 사랑이 네 가슴속에 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랑이 모든 해악으로부터 너를 보호할 것이니 어미의 희생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용기를 갖도록 해야 한다."

'금강산의…' 속에 나오는 글로, 홀로 딸을 키운 한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건넨 말이다. 이 감독은 이야기 속 어머니가 곧 우리의 이민 선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한 뒤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긴 사랑을 깨닫고, 나아가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겨야 할지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지난달 24일 입국한 그는 제물포항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항구와 내리교회를 찾아 촬영했고,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재외동포재단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복합문화공간 연남장에서 상영회를 열었다. 이어 14일 전라북도 정읍 CGV에서 상영회를, 17일 강원도 인제의 '끄트머리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돼 영화를 선보일 계획이다.

내년 1월 13일 미주한인 이민 119주년을 맞아 한미재단이 마련하는 '하와이 이민의 날' 행사에서 상영하고, 28일에는 마우이에서도 공개할 예정이다.

'무지개…'은 지상천국, 신혼여행지 등으로 국한돼있는 하와이의 단편적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는 미주 한인 이민 선조들의 땀과 노력, 사랑의 결실 등을 보여준다.

영화는 프롤로그(20분)와 5편의 본편(각 20분)으로 구성됐다. 프롤로그에서는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땅을 처음 밟은 한국인 102명은 왜, 무엇을 위해 고국을 등지고 먼 이국땅으로 떠났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118년이 흐른 지금, 102명이었던 한국인은 7만여 명으로 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며 새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알려준다. 진행을 직접 맡은 이 감독은 영화 앞부분에서 "잊혀서는 안될 우리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지혜를 기록한다"고 밝혔다.

본편은 1903년부터 1920년까지 한국에서 하와이로 건너간 한인 이민 1세 직계자손 5명과의 인터뷰로 만들어졌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한인 3세 작가 게리 박 씨, 미국 내 첫 한국계 시장인 해리 김 하와이 카운티 시장, 한국인 첫 미국 주 대법원장인 문대양 전 하와이주 대법원장, 하와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약하는 마이클 임 씨, 양성철 전 주미대사의 아내인 이정진(미국명 데이지 양) 교수다.

박 작가는 하와이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사회운동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의 할머니는 1903년 첫 이민선을 탔던 할아버지의 사진만을 보고 1910년 하와이에 온 '사진 신부' 임옥순 여사다.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며 12명 의 자식을 키워낸 친할머니가 물려준 사랑의 언어들을 작가만의 깊은 성찰을 통해 보여준다.

시장직 12년을 포함해 36년의 공직생활을 한 해리 김 전 시장은 청렴결백한 정치인의 표본으로 조명한다. 사진신부인 어머니 김야물 여사와 사탕수수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 슬하의 8남매의 막내로 궁핍하게 자란 그가 '사랑이 가득한 정치인'의 표상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17년간 하와이 사법부를 진두진휘한 문대양 전 주 대법원장은 첫 이민선에 탔던 문정헌씨의 손자이고, 마이클 임 씨는 증조부모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의 권익 보호와 고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 안원규, 안정송이다.

현재 촬영을 마치고 편집 중인 마지막 회에는 이정진 교수가 2015년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에 거액의 기부금을 약정하고, 한국에 사는 이유와 지금은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변모한 인천항(제물포항)을 담고 있다.

이 감독은 "미주 한인 이민사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와 삶의 태도를 배우고, 기록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역할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고 싶었다"며 "한국인에게만 어필하는 이른바 '국뽕' 영화가 아닌, 영어 시청 인구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제작했으며 차별 없는 세상, 다양성의 가치, 공존의 아름다움을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에 1년여가 걸린 이 영화는 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고, 앞으로 한국과 미주 공·사립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 등에서 상영회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이 감독이 한인 이민사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5년 전 김창원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장을 만나면서다. 하와이 한인 사회에서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는 그는 하와이의 한 건축 회사의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서 회장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미주 한인 최초로 주립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하와이 최초의 한인 은행을 설립했다.

"성인이 되고부터 일흔 넘은 지금까지 나는 단 하루도 우리 이민 선조들이 하와이에서 흘린 피와 땀을 잊은 적이 없어요. 하루 열 시간씩 일하면서도 고국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낸 그분들의 마음을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안락한 삶은 우리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그러니 저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젊은 친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어른 된 도리이자 책임이지요."

한인방송국에 근무할 당시 김 전 회장을 인터뷰했던 이 감독은 당시 이러한 이야기가 가슴에 꽂혔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이 영화의 시즌 2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하와이뿐만 아니라 멕시코 등 다른 국가 한인 이민사를 그 후손을 통해 짚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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