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의 통근버스 세계

지난달 24일 오전 7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전자 나노시티(기흥 반도체 사업장) 입구에 있는 정류장으로 버스 40여대가 줄 지어 들어왔다. 버스가 서자 목에 사원증을 건 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버스 앞에는 '기흥 캠퍼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1~27번까지 적혀 있는 플랫폼에는 일산·수지·목동 같은 지역명이 적혀 있었다. 대규모 '시외버스 터미널'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나노시티의 통근버스 정류장이다. 인근 화성·온양캠퍼스까지 포함해 통근버스 숫자는 총 465대다.
운행하는 노선 633개, 하루 운행 횟수 1663회, 하루 이용자수 3만3607명으로 국내 단일 사업장 중 가장 큰 규모다. 운행 시간은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20시간이다. 사원증을 교통카드처럼 대기만 하면 탑승 가능하다. 버스 스케줄은 애플리케이션 '삼성 통근버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나노시티 직원 대부분이 통근버스를 이용한다. 15년 넘게 통근 버스로 출퇴근한다는 이광수 LED 사업부 개발팀 과장은 "좌석이 우등버스처럼 넓어 편안하게 쉬며 출근할 수 있다"며 "버스에 휴대폰이나 지갑을 놓고 내려도 버스 기사가 챙겨놓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의 '발' 통근버스

과거 통근버스는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직장인들의 생활권이 크게 넓어지면서 통근버스도 확 달라지고 있다. 운행 노선이 수도권 전역으로 뻗어져 나가고 자율근무제 시행 등으로 운행 횟수도 늘었다. 본지가 국내 10개 대기업 통근버스의 달라진 점을 분석해봤다.

통근버스의 가장 큰 매력은 가격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사원들의 통근버스 운영료로 월 1만~3만원을 받는다. 버스나 개인승용차로 출퇴근할 경우 매월 최소한 6만원 이상 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쾌적하게 출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통카드를 대듯 사원증을 대거나 명함을 버스 회수권처럼 사용하는 방식이다.

입석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인원이 초과해 모두 앉아갈 수 없으면 회사 측이 추가로 버스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승객들의 목적지가 동일하기 때문에 버스 기사들은 직원들이 모두 승차하면 실내등을 꺼 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양태욱 효성 사원은 "통근버스를 타면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 수 있어 도착 후 업무 집중도가 훨씬 더 높아진다"고 했다.


 


통근버스에는 각 기업 특유의 개성이 담겨 있다. '자율근무제'를 시행하는 삼성전자는 직원들의 다양한 출퇴근 시간에 맞춰 가장 많은 노선과 짧은 배차 간격이 특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3교대 근무 시스템, 자율근무제 등으로 출퇴근 시간이 직원들마다 다르다 보니 거기에 맞춰 통근버스를 운행한다"고 말했다.

출근 시간이 빨라 그룹 전체가 '아침형 체질(體質)'인 현대차그룹은 대부분의 통근버스가 7시 전후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린 직원들은 대부분 구내식당으로 가 아침밥을 먹고 사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한 후 8시 전에 업무를 시작한다. 이용자 수는 2800명으로 양재동 사옥 전체 인원의 절반이다.

대북(對北) 사업을 하는 현대그룹은 남북을 잇는 통근버스를 운행한다. 오전에는 서울 창덕궁에서 7시40분에 출발해 군사분계점(MDL)을 9시 30분에 통과하고, 오후에는 MDL을 5시에 통과해 서울로 돌아온다. 주로 현대아산 직원과 개성공단 직원들이 이용한다.

SK그룹은 2012년부터 22개 관계 계열사를 통합한 통근버스 시스템을 갖췄다. 장수(長壽) 기업인 두산그룹은 통근 버스 노선도 가장 긴 편이다. 두산중공업은 서울 사무소가 있는 강남 교보타워에서 경남 창원시 본사까지 하루 2회 오전 8시와 오후 5시 통근버스를 운행한다. 이동 거리만 4시간 이상 걸리는 이 통근버스는 주로 주말 부부, 출장자 등이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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