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반환 20년, 정치는 실패지만 경제는 성공
07/03/17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홍콩 반환 20년, 실패일까 성공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치는 실패지만 경제는 성공이다.
지난 20년 동안 홍콩 시민들은 끊임없이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 저항해 왔다. 그러나 경제는 지난 20년간 국내총생산(GDP)이 80% 증가했다. 홍콩의 중국반환은 경제적으로 대박은 아닐지언정 중박은 된다. 그러나 정치는 쪽박이다.
20년 전 중국은 일국양제라는 개념으로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 홍콩은 ‘홍인치항(紅人治港, 공산당이 홍콩을 통치한다)’이다. 홍콩 정부의 수반인 행정장관을 우리의 5공 때처럼 '체육관 선거'로 뽑고 있다. 선거위원도 베이징의 입맛에 따라 결정한다.
이에 따라 영국 식민지 시절 이미 자유의 맛을 본 홍콩 시민들은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우산혁명’ ‘어묵혁명’ 등이 잇따랐다.
우산혁명은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곤봉과 최루액을 막아 비롯된 말이다. 우산혁명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2014년 9월 하순부터 12월 15일까지 약 79일간 이어졌다. 이 시위로 시민 1000명가량이 체포됐다. 그러나 베이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산혁명이 실패로 막을 내리자 후유증이 컸다. 무엇보다 좌절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중 정서가 확산했다. 이제 단순히 민주화가 아니라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타난 시위가 바로 어묵혁명이다. 2016년 2월 8일, 춘제(음력 설) 밤에 식품위생국 직원들이 몽콕에 있던 무허가 어묵 노점상의 철거를 시도하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노점상 주인과 함께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130명이 부상하고 65명이 체포됐다.
주목할 대목은 어묵혁명이 독립파의 본격적인 부상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독립파는 대만과 연합, 중국에 맞서는 것을 도모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지난 20년간 홍콩의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홍콩 경제는 반환 이후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아시아 금융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무난히 극복했다.
GDP는 1997년 1조3730억 홍콩달러에서 2016년 2조4910억 홍콩달러로 80% 늘었다. 개도국이라면 사실 별것 아니다. 그러나 홍콩은 사실상 선진국이다. 이런 경제가 지난 20년간 80% 성장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성과다. 물론 중국의 대자본이 홍콩에 상륙해 집값이 폭등하고 빈부격차가 커진 부작용도 있었다. 그러나 대륙의 자본이 홍콩에 대거 몰려옴에 따라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그 위상을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베이징은 홍콩에게 “먹고살게는 해 줄 테니, 말 잘 들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은 베이징에게 “어떻게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있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과 홍콩의 불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결코 베이징은 홍콩의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홍콩이 독립할 수도 없다. 가공할 무력을 가진 공산당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베이징의 입장에서 홍콩은 시험 케이스에 불과하다. 당초 일국양제의 아이디어는 홍콩이 아니라 대만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국양제 아이디어는 1983년 처음 나왔다. 대만 출신의 재미학자인 양리위(楊力宇)가 이 아이디어를 덩샤오핑에게 제시했다.
덩샤오핑은 곧바로 대만에 “통일이 되고 나면 대만은 향후 50년 동안 기존의 사회 및 경제체제는 물론 정부와 군대까지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덩은 중국이 원하는 것은 국민당 정권이 만든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란 나라 이름을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덩샤오핑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등 세계의 주요 정치 지도자를 만날 때마다 일국양제의 개념을 선전했다. 대만은 또 다른 통일전선 전술이라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조차 만료 기간이 다가오는 영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에 따라 덩은 일국양제를 대만이 아니라 홍콩에 먼저 적용한 것이다.
베이징은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과 홍콩의 불화는 중국이 민주화되기 전까지는 해소 불가능한 갈등인 것이다. 결국 문제는 중국의 민주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