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vs 북한 비핵화

지난해 10월 31일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한미 '외교·국방(2+2)장관회의'가 끝난 후 공동기자회견이 열렸다. 조태열 외교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미국 측 장관들은 모두발언에서 비핵화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저희의 정책은 유지된다. 그것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한 반면 미국 측은 비핵화를 거론하기는 했지만, 북한만이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를 언급했다.

북한의 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는 개념 차이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전체에서 핵무기와 핵 위협을 제거한다는 의미로 남북한을 아우르는 상호 개념이다. 한국 내 핵무기 배치 금지와 핵 개발 가능성 제거,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 제거 및 핵 전략자산 전개 금지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북한은 이것을 미국의 핵우산이라는 '핵 위협'을 제거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해석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 북한은 트럼프 1기 당시 2018년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할 수 있었다. 반면 북한 비핵화는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핵무장 해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의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목표다. 북한의 일방적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북한은 이 개념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역대 미국 행정부에서는 두 가지 표현을 혼용해왔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26일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미국 측과 협의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일관되게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미일 워싱턴 정상회담(2.7)과 독일 뮌헨 한미일 외교장관회의(2.15) 결과물에서 잇달아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쓰였다.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기본적으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 모두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한다"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 상 문구에도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기술돼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비핵화는 북한의 의무 위반과 이행 필요성을 명확히 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에서 북한 비핵화로 용어를 바꾼 것은 정책 변화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정책으로 전환하면 향후 북미 협상이 열리더라도 트럼프 1기 때처럼 순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의 핵무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라진 것 자체가 핵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의미한 환경 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태열 외교장관은 26일 국회 상임위 답변에서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지만 '오프 더 테이블'(논외)은 아니다"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전 종전협상에서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 편에 서는 행태를 보고 '자강론'이 대두되는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핵무장론이 더 힘을 얻는 형국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자체 보유한다고 해서 더 안전해질 수 있을까 싶다. 안보 환경 변화를 차분히 숙고하면서 곧 한반도에 들이닥칠 '트럼프 파고'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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