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희생 영원히 기억되길"...한국전쟁 해외 참전 노병 기록 남기는 라미 현 작가

"생존하신 한국전쟁 참전용사 연령대가 보통 아흔 살이 넘거든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요. 힘닿는 데까지 한 분이라도 더 만나 사진으로 남길 거예요. 그래서 당신의 헌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할 겁니다."

라미 현(본명 현효제·43) 사진작가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젊은 층보다는 중장년층에게 더 유명한 인물이다. 이제까지 미국과 영국 등을 누비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노병을 만나 그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현 작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인연을 맺은 참전용사 1천400여 명의 사진이 가득하다.

최근에는 인기 양상이 다소 바뀌었다. 얼마 전 국내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의 활동이 알려지며 10대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현 작가는 2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무엇보다 전쟁세대가 아닌 이들의 관심이 커진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라며 "집에서 TV를 함께 보던 부모님이나 할아버지와 한국전쟁을 두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후기를 들었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2003년 미국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 입학해 사진학을 전공하면서 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그는 2013년부터 군복이 지니는 의미를 알리는 취지로 한국군의 군복을 촬영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2016년 국내에서 열린 한 군복 사진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난 외국인 참전용사는 그의 사진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

"미국 해병대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분이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을 봤는데요. 자신의 참전 경험에 큰 자부심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궁금했죠. '왜 자신과 상관없는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저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걸까' 하고요."

그는 "이듬해부터 미국과 영국 등에 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 그들의 모습을 담는 작업을 하기로 결심했다"며 "사진작가의 사명은 무언가를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사를 들여다보면서 규모나 피해 액수, 사상자 등 기록은 풍부했으나 정작 사람 이야기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결심의 이유였다.

작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각국 전우회나 협회, 대사관 등을 찾아 프로젝트 취지를 알리고 포트폴리오를 보냈으나 회신이 오는 곳은 드물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두드리자 결국 영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고 2017년 7월 첫 작업이 진행됐다.

이후 미국 워싱턴과 뉴욕, 캘리포니아 등 20여 개 주와 영국 등을 돌면서 1천 명이 넘는 참전용사를 만났다. 미국 참전용사협회도 그의 진정성을 인정해 2018년 공식 촬영 허가권을 줬다.

그는 "대부분 거동이 불편해 직접 찾아뵐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현재 삶과 당시 군복입은 모습 등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액자와 달력 등으로 제작해 선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권이나 액자 구매 등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운영하던 스튜디오를 정리해 충당했다. 최근에는 기업이나 민간 후원, 펀딩 등이 늘어 한숨 돌렸다고 한다.

가슴 찡한 사연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파병을 떠나면서 결혼을 약속한 상대와 연락이 엇갈린 탓에 50여 년 만에 재회한 노부부와 전투 중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었지만 꿋꿋하게 군 복무를 마친 노병이 그랬다.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잊지 않고 찾아와서 감동했다'고 하더라고요. 더는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미 자유를 누리는 자는 자유를 빼앗긴 이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요."

지난해까지 미국을 무대로 작업을 이어오던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이동이 제한되면서 작업에 차질을 빚자 같은 해 10월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참전 용사를 만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현 작가의 마음은 조급하다. 아직 만나야 할 분은 많은데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는 "관련 기관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연락처를 알려주는 데 난색을 보이고, 경계심이 큰 당사자도 있다"며 "다행히 예능 프로그램 출연 덕분에 하루 30∼40명씩 촬영을 부탁한다고 먼저 연락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이 이 땅을 목숨 걸고 지켰던 이가 누구였는지 알 수 있도록 한 명이라도 더 기록할 것"이라며 "군인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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