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참전용사회 결성 일주일 만에 한국전에 청춘 바친 멕시코 노병 별세

71년 전 한국전쟁 당시 미군 소속으로 싸웠던 멕시코 참전용사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이 지난 1일(현지시간)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결성되고, 비야레알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지 꼭 일주일 만이다. 그리고 그가 스무 살 무렵 한반도에서 청춘을 바친 사실이 재조명된 지 10개월여 만이다.

193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비야레알은 4살 때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돌아갔다가 18살 때 홀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입대하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후 얼마지 않아 멀고도 낯선 한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고, 미군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전역 후 잠시 미국서 머물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을 이루고, 자동차회사에 근무하며 열심히 살았다.

미국에 있었다면 한국과 미국 양국으로부터 '영웅' 소리를 듣고 감사 인사를 들었을 테지만, 멕시코로 돌아온 그의 전쟁 경험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고국에서 그가 한국전 참전 사실을 얘기하면 '베트남전을 말하는 것이냐' '제2차 대전에 참전한 것이냐'는 물음이 나왔다고 했다. 그만큼 6·25는 멕시코에서 '잊힌 전쟁'이었다.

비야레알의 참전 사실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 발발 70주년이었던 지난해였다.

당시 브루노 피게로아 주한 멕시코 대사는 우리 외교부 세미나를 통해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멕시코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180만 명의 미군 참전용사 중 10%인 18만 명이 히스패닉이었으며, 이중 10만 명 이상이 멕시코 참전용사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서울발 세미나 기사를 본 기자는 주한 멕시코대사관에 연락해 멕시코 내에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 중 한 명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주한 대사관 측은 멕시코시티 근교에 거주하고 있는 비야레알의 연락처를 전달해줬다.

지난해 7월 아흔 살 생일을 두 달가량 앞두고 자택에서 만난 비야레알은 정정했다.

희미해진 70년 전 전쟁의 기억, 그리고 이후 멕시코에서 지나온 삶의 기억들을 조각조각 들려줬고 뉴스에서 본 한국 정치인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증손자까지 4대가 모인 가족들은 비야레알을 참전 경험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자녀 중 누군가는 "아버지가 아흔이 다 돼서 유명해지실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인터뷰는 한 번에 그쳤지만, 한국 정부와 비야레알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의 김윤주 국방무관은 당시 기자의 동행 제안에 홍삼과 마스크 등 우리 정부의 선물을 들고 함께 비야레알을 찾았다.

두 달 후 비야레알의 생일에 서정인 주멕시코 대사는 청자를 선물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멕시코를 방문한 김건 외교부 차관보는 그에게 국가보훈처의 평화의 사도 메달을 증정했다.

주멕시코 대사관은 현지 언론 등을 통해 비야레알과 같은 숨은 멕시코 참전용사를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엘우니베르살, 밀레니오 등 현지 주요 매체들이 비야레알을 인터뷰했다.

그가 전쟁 중 손으로 써 내려간 회고록이 최근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기도 했다. 잊힌 채 지낸 70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말년 몇 개월의 그에겐 늘 '한국전 참전용사'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멕시코 내 생존 참전용사 3명과 작고 참전용사 5명의 유족이 새로 확인되면서, 대사관은 지난 24일 마침내 멕시코 한국전 참전용사회를 결성했다.

아직 찾지 못한 참전용사들이 많았지만, 생존 노병들이 모두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해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의 멕시코 방문에 맞춰 서둘러 출범식을 마련한 것이었다.

출범식 전 화상 모임에서 비야레알은 희망대로 초대 회장이 됐다.

출범식 당일 비야레알은 열 달 전 인터뷰 때보다 크게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며칠 전부터 컨디션이 갑자기 악화했다며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왔다. 주최 측은 힘들면 화상으로 참석하시라 권했으나 직접 오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했다.

준비한 기념사는 부회장이 대독했고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였으나, 전우들이 외치는 '페페'('호세'의 애칭) 소리에 힘껏 고개를 들어보기도 하며 끝까지 출범식을 함께 했다.

이후 잠시 기운을 차렸다던 비야레알은 출범식 일주일 후 여느 때처럼 꿀을 탄 우유를 한 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부고를 듣고 곧바로 빈소를 찾은 김윤주 무관은 고인이 편안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자신을 기억해준 대한민국에 고마워하고 행복해했다며, 김 무관에게 감사를 전했다.

관 위에는 70년 전 한반도에서 입었던 그의 군복과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한글 글귀가 적힌 목도리, 태극기와 멕시코 국기가 양옆에 붙은 참전용사 모자가 고이 놓여 있었다.

서정인 대사는 우리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 조의와 감사함을 표시했다.

잊힌 영웅이었던 비야레알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킨 '평화의 사도'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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