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 89주기 추모행사

김좌진 순국 89주기인 지난 24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와 중국 동북 3성 지역 한인회 등은 김 장군의 순국지인 중국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에서 추모행사를 열었다.


25일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김좌진은 1920년 10월 21~26일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7차례 전투해, 3천여명의 일본군 사상자를 낸 청산리대첩의 승리를 이끌었다.


1927년 김좌진은 병사와 가족 등 800여명을 이끌고 하이린시로 이주, '한족 총연합회'를 결성하고 둔전과 정미소를 경영했다. 이후 정미소에서 독립운동 노선을 달리하는 박상실의 흉탄을 맞고 숨을 거뒀다.


순국 장소에는 정미소와 자택 등이 복원돼 있고, 김좌진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김 장군의 손녀인 김을동 전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흉상 앞에서 참배하고 김 장군의 정신을 기렸다.


김 전 의원은 앞서 한중우의공원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선열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열악하고 험악한 환경에서도 미래를 꿈꿨고 노력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안위를 내던지며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한줄기 서광을 봤다"고 말했다.


한편 참석자들은 한중우의공원 기념관 안에 안치된 위안부 피해자 이수단 할머니의 유골함에도 참배했다.


 


김좌진(金佐鎭, 1889년 12월 16일 ~ 1930년 1월 24일)은 일제 강점기의 군인이자 독립운동가이었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했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었으며, 김동삼, 오동진 등과 3대 맹장(猛將)으로 불리기도 하였다.[1]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2]에 의해 피살되었다. 본관은 신 안동. 김상용의 11대손이며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다.


나이 17세에 집안의 가노를 해방 및 땅을 분배하였고 민족적 자립을 위한 한국의 무장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는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도 활발히 펼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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