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프간 피란민 해외기지 수용시' 주둔국과 충분히 협의하길

미국이 탈레반 재집권 이후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해 자국 내뿐 아니라 한국 등 해외 미군기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런 취지의 뉴스를 전했다. 미군의 아프간 전면철수 예정 시점보다 빨리 탈레반이 정권 재장악에 성공하자 보복정치와 인권후퇴 등을 걱정한 아프간인들의 엑소더스가 이뤄지면서 급부상한 현안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아프간 전쟁을 수행해 온 미국의 사후 처리 절차여서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실제 미군은 수송기 등을 이용해 피란민을 카타르와 바레인, 독일의 미군 기지로 태워 날랐는데, 이들 시설은 이미 넘쳐나는 피란민들로 포화 상태라고 한다. 미국이 추정하는 카불 함락 후 아프간인 대피자는 1만7천 명 정도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 수행 중 협력한 현지인과 가족의 숫자를 5만~6만5천 명으로 파악하고, 8월 말까지 이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목표를 정해놓은 상태다. 즉 앞으로 임시 수용 시설에 들어갈 추가 피란민이 적어도 3만∼4만 명 정도에 달한다는 얘기다. 미국이 수용시설을 고민하게 된 배경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슬람 무장 조직인 탈레반이 금세 표변해 폭정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피란 행렬이 더욱 길어질 가능성을 키우는 점이다. 미국의 추정치를 웃도는 아프간 민간인들이 억압을 피해, 또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출 시도를 감행할 수 있는 나쁜 환경이 급속도로 조성된 국면이다. 탈레반은 카불 함락 후 여성 인권 회복과 개방적인 정부 구성 등 전향적인 약속을 내놨으나, 1996년부터 5년간 집권하면서 악명을 떨쳤던 여성 탄압의 흑역사를 재연하려는 시도가 불과 며칠 새 잇따라 포착됐다. 여성들의 교육·노동 기회를 박탈하고, 외출 시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했던 엄혹한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기시감을 일으키는 사건들이다. 지난주 부르카를 입지 않은 채 외출했던 여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보도는 탈레반 특유의 억압 본능을 재삼 일깨웠다. 미국 등 서방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과 현지 활동 기자들에 대한 위협도 현실화했다. 탈레반은 독일 공영방송 소속 기자 집을 급습해 가족 1명을 사살했고, 아프간 현지 라디오방송국인 팍티아가그 대표의 목숨도 앗아갔다. 탈레반은 유일한 탈출구인 카불 공항으로 가는 길을 막고 검문을 벌이는 등 봉쇄 정치에 나섰다. 그러나 억압이 거셀수록 탈출 욕구는 더욱 커질 것임이 자명하다. 서방 세계가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란처 제공에 인색해선 안 되는 이유다.

다만 미국 주도의 피난민 분산 대피는 여러 우방 및 동맹국들과 충분한 협의와 교감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미국은 버지니아와 인디애나, 캘리포니아, 아칸소주에 있는 자국 내 군 기지를 수용 대상 시설로 우선 검토하고, 여건과 상황에 따라 한국, 일본, 코소보, 바레인, 이탈리아 등에 있는 해외 기지를 활용하려는 계산인 것 같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끌고 온 장기 전쟁의 마무리인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자국 내 기지를 우선 검토 대상에 올리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결론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미군의 해외 기지로 분산하려 한다면 피란민 규모와 체류 기간 등에 관해 반드시 주둔국 정부의 동의를 얻는 선행 절차를 밟길 바란다. 해외 기지가 주둔국과의 협정에 따라 '치외법권적' 지위를 갖는다고는 하지만, 일방통행식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어서다. 주둔국의 내부 사정과 국민 여론 등도 면밀하게 살펴본 토대 위에서 판단하지 않으면 자칫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시각으로 23일 새벽에 아프간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연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연설을 계기로 우방과 동맹국에 인도적 차원의 아프간 피란민 분산 수용을 요청할 수도 있다. 마침 성김 대북특별대표가 방한 중인데, 우리 정부는 그를 통해 미국 조야의 기류를 미리 파악해 보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 군과 외교당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내부 입장 정리에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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