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원산지 가준 누적 조항' 한국 경제에우려
10/07/15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국들이 TPP 규범 중 원산지 기준을 누적 조항으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국 경제에 끼칠 부정적 영향이 수출 감소뿐만 아니라 일자리 증발, 투자 유치 감소, 부품 조달 공급처 차단 등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는 물론 정부도 원산지 누적 규정으로 한국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세계 최대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누적원산지' 기준이 자칫 한국 내 산업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TPP 회원국들 간 무역거래에서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품목별로 일정 비율 이상 원재료를 역내조달(회원국들 간에 조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섬유업체 등이 TPP 가입 12개국 기업들로부터 외면받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 기반을 TPP 가입국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TPP 누적원산지 기준이란 TPP 12개국 중 A가 생산한 제품을 B에 수출할 때 무관세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생산제품 원재료의 일정 비율 이상을 TPP 체결 12개국 중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김재홍 KOTRA 사장은 7일 한국이 빠진 채로 타결된 TPP에 대해 "TPP에 못 들어가더라도 관세는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며, 한국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누적원산지 기준"이라고 말했다.
■누적원산지, 무엇이 문제인가
TPP 가입 12개국은 서로 제품을 수출할 때는 관세를 면제받는다.
그러나 관세 면제를 위해서는 생산한 제품의 원재료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역내(TPP 체결국)에서 조달해야 한다.
외국 투자기업이 TPP 역외국인 한국 대신 일본 등 역내국으로 진출을 꾀하고, 동남아 소재·부품기업들이 관세 인하 혜택을 위해 한국이 아닌 TPP 역내국과 손을 잡고, 국내 기업 공동화 현상으로 일자리가 줄어 결국 투자·수출·고용에 모두 악영향을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베트남이 TPP에 참여하면서 원산지 누적에 따른 관세 인하 혜택을 노리는 국제 교역망의 움직임은 가속화하고 있다. 김학도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한국 섬유기업이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중남미 지역에서도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소재·부품 분야에서도 TPP 역외국인 한국과 거래를 차단하고 일본산 소재·부품을 수입하는 국가들이 생겨날 것으로도 염려된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은 "동남아 국가들은 TPP 특혜관세 혜택을 받고자 소재·부품을 수입해 조립·가공하는 과정에서 자국산으로 인정받는 일본산을 선택해 미국으로 수출하려 할 것"이라며 "한국 소재·부품 분야 피해가 염려된다"고 말했다.
한국 수출기업들이 원자재를 무관세로 들여오지 못해 소재·부품 공급망을 잃을 염려도 나온다. 왕준영 대한상공회의소 관세사는 "일본 기업들은 무관세 내지 저관세로 원자재 소싱을 해 싸게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반면 우리 수출기업들은 이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산지 누적 규정으로 인한 폐해는 국내 기업의 국외 이전을 가속화해 결국 국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예상된다. 김한성 아주대 교수는 "TPP에 불참하면 5년, 10년 뒤 글로벌 교역망에서 한국이 도태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이는 결국 수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한국이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관세 인하 혜택을 입었다면 향후 최종 재화를 수출하는 국가들이 한국산 원재료를 TPP 역외국으로 이전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일본이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 때 TPP 조약에 따라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차 한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부품의 55% 이상을 TPP 가입국 안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일본이 차를 만들면서 TPP 협정에서 정한 누적원산지 비율을 넘는 수준의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했다면 이 자동차는 협정국 내에서 수출할 때 관세를 면제받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TPP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6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TPP 합의문 요약본에 따르면 12개국은 이런 내용의 누적원산지 기준을 일괄적용키로 했다. 누적원산지 적용을 위한 원재료 조달 비율은 품목별로 모두 다르게 책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PP 미가입이 산업공동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런 이유에서다. TPP 가입국가들이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 제품의 원재료를 역내에서만 조달할 경우 우리나라의 원재료 수출기업들은 졸지에 시장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TPP 가입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기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국내 생산기반의 공동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