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채 규제 완화 논의, 재정 부담과 금융안정 사이

영란은행이 은행의 레버리지 규제에서 영국 국채를 제외하거나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런던 금융시장의 논쟁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은 현재 규제가 국채 보유를 불필요하게 억제하고 있으며, 규칙을 조정하면 국채 수요가 늘어 정부 차입 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높은 재정 적자와 대규모 차환 수요를 안고 있어 국채 시장의 안정적 수요 기반이 중요하다. 규제 완화 논의는 단순한 은행 규칙 문제가 아니라 재정과 통화, 금융안정이 만나는 지점이다.

바클레이스로이즈 등 은행들은 길트 보유 확대가 시장 유동성을 높이고 수익률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일부 추정에서는 은행권의 국채 보유가 크게 늘어날 경우 정부 이자비용 절감 효과가 수십억 파운드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유사 규제를 완화한 뒤 글로벌 은행들이 자본 배분을 재검토하는 상황에서, 영국만 기존 규제를 유지하면 길트 시장의 상대적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반론은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레버리지 규제는 은행이 위험가중치가 낮은 자산을 대규모로 쌓아두며 전체 레버리지를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국채가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더라도 금리 급등기에는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유동성 위기 때는 담보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 전직 규제 당국자들은 국채를 규제 산식에서 빼는 것이 화재경보기의 배터리를 빼는 것과 비슷하다고 경고한다. 특히 영국은 2022년 길트 시장 혼란을 경험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재정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민감성이 있다. 고금리 환경에서 정부 부채 이자비용이 늘어나면 재정정책의 여지가 줄고, 투자자들은 국채 발행 물량과 성장 전망을 더 엄격하게 평가한다. 은행이 국채를 더 많이 사주면 단기적으로 수급은 좋아질 수 있지만, 은행과 정부의 위험이 더 강하게 연결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 때 자주 지적됐던 국가와 은행의 위험 연쇄를 떠올리게 한다.

영란은행의 선택지는 전면 완화와 현상 유지 사이에만 있지 않다. 특정 만기나 시장조성 목적 보유분에 한해 제한적으로 조정하거나,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와 함께 보완장치를 붙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국채 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금융안정 규제의 핵심 원칙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 논의는 영국뿐 아니라 고부채 선진국 전체가 직면한 문제를 보여준다. 높은 금리 시대에는 안전자산조차 정치와 규제, 은행 건전성의 교차로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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